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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1 10:48 수정 : 2019.10.11 12:08

여성주의 철학자와 비건 요리사가 함께 쓴 육식비판
“육식은 종차별주의·성차별·동성애혐오와 연결”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황주영·안백린 지음/들녘·1만4800원

멀리서 방문한 할머니를 위해 어머니는 요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육수를 내기 위해 멸치를 쓰고자 했지만 비건(채식주의자)인 딸이 반대했다. 이 모습은 ‘채식’을 주제로 한 한 방송국의 다큐에 방영되었고, 네티즌들의 비난 포화를 받았다. “멸치의 생명권은 존중하면서 왜 할머니의 멸치 먹을 선택권은 존중하지 못하냐” “멸치 때문에 가족이 분란을 일으켜야 하냐”….

한 채식주의자가 퀴어, 여성, 장애인, 노동자와 함께하는 이른바 진보적인 교회에서 동물권 강연을 열었다. 공장식 축산 현실을 담은 동영상을 틀었는데, 교인들은 불편하다면서 더 이상의 동물권 논의를 거부했다. 동영상이 잔인하다며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영화에 가장 익숙할 것 같은 중년 남성들이었다.

동물권단체케어,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2017년 8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살충제 달걀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철창안의 닭들에게 살충제를 뿌리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공장식 축산과 감금틀 사육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계적으로 채식주의자가 2억명에 육박하면서 새로운 마케팅 시장으로 떠오를 정도로 채식주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채식주의는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까탈스런 존재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조용히 혼자만 채식을 하기에 편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육식은 수렵채취를 하던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식습관이다” “식물은 그럼 생명이 아니냐”는 주장과 조롱에 대한 답변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여성주의 철학자와 비건 셰프가 함께 쓴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는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에피소드부터 시작해 여성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육식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책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부터 종차별주의, 동물학대, 자본주의, 성폭력과 여성차별, 동성애혐오까지 이 모든 게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연결된 하나의 문제라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인간을 가장 우위에 두는 종차별주의는 외부적으론 동물학대를 낳고, 내부적으론 인간 안에서도 여성, 동성애자 등으로 세밀하게 차등을 두고 차별한다. 이같은 차별구조는 오로지 ‘재생산’을 가장 중시하는 자본주의에 철저히 복무한다. 여성과 동물은 재생산 도구로 착취당하고, 동성애는 재생산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억압당한다. 포유류와 조류 300여종 이상에서 동성애적 행동이나 생활방식이 발견되었음에도 이에 대해 자연학자들이 눈을 감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 앞에서 ‘히틀러’나 다름없다. 인간의 세치 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의 얼굴 주름을 펴기 위해서, 인간의 화려한 패션을 위해서, 동물들은 고기·화장품·옷으로 유린당한다.

물론, 채식주의를 실천하려고 이같은 분석과 철학까지 필요하진 않다. 그저 “어린 시절 살아 있는 동물을 처음 만났을 때, 그 동물과 친구가 되려고 했던 그 자아”를 떠올리면 된다. 그러면 “잃어버렸던 진실된 관계와 연민·열정·자유 그리고 생명력”까지 되찾을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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