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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17:40 수정 : 2005.12.30 16:15

<하버드가 지배한다>
리처드 브래들리 지음. 문은실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1만9500원

“서울 창녀 100만” “여성 수학 못해” 막말 장본인 서머스, 하버드 총장 취임하자 인문학 외면하고 캠퍼스 확장 ‘신자유 신보수의 전당’ 미국 축소판 개조 상대편 제거 드라마틱한 전말 추적

<하버드가 지배한다>(Harvard Rules)(생각의 나무 펴냄)는 로렌스 헨리 서머스의 하버드 대학 평정기다. 그냥 단순한 평정기는 아니다. 서머스가 이룩한 하버드 대학의 세계화, 신보수주의(네오콘) 버전으로의 획기적인 재편에 관한 탐사보도 쯤으로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어떻게 하버드를 장악했던가?

그 전에, 서머스는 누군가?

지난 7월1일 하버드대 여름학기 개강 환영식에서 그는 “1970년대 서울엔 미성년 창녀 수가 100만명에 달했는데,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며 “이는 경제성장이 가져다 준 놀라운 기회 때문”이라는, 사실이 아닌 ‘막말’로 한국인들을 흥분시킨 장본인이다. 말썽이 나자 그는 보좌관을 시켜 ‘간접’ 사과했다. 그가 한국을 진짜 격동케 한 사건은 따로 있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하에 들어갔을 때 미국 재무부 차관으로, 그리고 장관으로 그 모든 과정을 총지휘하면서 거의 생살여탈권을 쥐다시피 했던 사람이 바로 그다. 이는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확인해준 사실이다.

올해 초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전미경제연구국(NBER) 회의에서 그는 하버드대 총장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여성비하 발언으로 세계를 또 한번 술렁이게 만들었다. 1월17일 <보스턴글로브>는 이렇게 전했다. “(서머스는) 과학·공학 분야 고위직에 여성 숫자가 적은 이유로,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이 1주일에 80시간씩 일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고교 때 과학과 수학 성적 최우등생중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점을 들고, 이는 남녀간의 선천적인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97년 IMF 지휘 한국과 악연

1954년생인 서머스는 유대계 명문 학자집안 출신이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은 그의 큰아버지이고, 72년에 역시 노벨 경제학상을 탄 켄 에로는 외삼촌이다. 수학에 재능을 보이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수학공부를 했으나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고 거기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일찌감치 워싱턴으로 가, 헨리 키신저 이래 학자출신으로는 정계에서 가장 출세한 인물 중 한사람이 됐다. 세계은행 수석 경제연구원 등을 거쳐 빌 클린턴 정권 때 루빈 재무장관 밑에서 차관을 지내고 그의 뒤를 이어 99년 장관이 됐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의 패배로 정권이 공화당에 넘어가자 물러났으나, 2001년 하버드대학 27대 총장자리를 차지한 그는 거침없이 정적들을 제거하며 삽시간에 하버드 역사에서 보기 드문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했다.


그가 세계은행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문건이 돌았다.

‘가난한 나라는 오염산업을 받아들여 필요한 국고를 확충할 수 있을 것이고, 질병이 증가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그다지 없을 것이다.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어차피 수명이 짧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립선암을 야기할 확률이 기껏해야 100만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폐기물에 대한 쓸데없는 우려가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이전된 것이다. 전립선암에서 살아남는 투병기는 이제 그들의 몫이 돼야 한다. …가장 돈을 못 버는 나라에 독성 폐기물을 내버린다는 경제논리에는 허점이 전혀 없다.’

2004년 6월10일 로렌스 서머스(앞 오른쪽) 하버드대 총장이 취임한 뒤 세번째 맞은 졸업식에서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다. 생각의 나무 제공
이 부도덕한 문건은 그의 젊은 조수 랜트 프리쳇이 썼다는 해명이 있었으나 한때 그의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 정면으로 비판한 서머스식 세계화의 논리는 “허점이 전혀 없다”로 끝나는 문건의 정신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내가 보기에 세계화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시장지배력, 이 세가지 힘을 효과적으로 틀어쥘 수 있는 나라나 사업가, 개인만이 다음 세기에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서머스가 내린 결론이다. 하버드 총장이 된 그가 1960년대 진보주의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돈 안되는’ 인문학을 외면하면서 생명공학 등 이공계 분야를 중시하고, 캠퍼스를 찰스 강 너머 올스턴까지 대대적으로 확장하며, 세계 곳곳에 분교를 두고 유학생을 대폭 늘리는 세계화에 매진하는 논리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경쟁 오로지 경쟁, 그리고 다양성보다는 우수성, 효율성에 집착하는 그의 하버드 개조 구상은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의 진원지 미국의 자화상 같다.

빈국 오염산업으로 국고 채워라

“회의론자들은 세계화가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제국주의, 주로 미국에 의한 제국주의 코드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주장하기를, 세계화는 환경을 약탈하고, 토착문화를 고사시키며,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마을에나 맥도널드가 들어서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득세하는 길로 이끈다. 미국의 은행가들과 정치가들이 결정권을 쥐고, 세계의 나라들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세계화는 가진 자, 교육을 잘 받고 세계경제의 변화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받은 사람에게는 훌륭해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못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조상 대대로 이제껏 이어온 삶의 방식이 아무런 댓가도 없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광경을 목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판은 자유와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서머스의 ‘워싱턴 사단’은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부의 적’들을 무자비하게 도려냈다.

흑인 스타교수·인문학 싹둑

전임 닐 루덴스타인이 애지중지 키운 미국흑인학과의 스타 교수 코넬 웨스트, 앤서니 아피아, 학부 학장 해리 루이스, 대학 의전관 리처드 헌트, 역사와 문학 학위위원회 강사 티모시 패트릭 매카시, 브라이언 팔머 등 저항하던 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2002년 졸업생 이슬람계 자이드 야신의 졸업연설 제목 ‘나의 아메리칸 지하드’는 9·11의 광풍 속에 끝내 존중받지 못했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하는 미국-이스라엘 분리운동은 반유대주의로 매도당했고, 사회적 약자 보호법(어퍼머티브 액션)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이로 인해 사상과 발표의 자유를 둘러싼 하버드의 내부분열이 한때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했으나 얼마가지 않았다. 서머스와 그의 편에 선 하버드법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책은 그 전말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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