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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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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식을 낳는 것과 책을 남기는 것’이라고 움베르토 에코는 말했지만, 불멸의 고전이 과연 저자의 죽음을 극복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은 책은 독자들의 지루한 일상을 잘 극복해준다는 것! 그것이 좋은 책의 매력이다. 올해 말에도 여러 언론들이 ‘올해의 책’이란 이름으로 좋은 책들을 선정했다. 그러나 ‘올해의 책’은 그 이름에 걸맞은 무게가 느껴져야 선정되는 법. 그러다보니 주목할 만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에서 아깝게 리스트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책은 제임스 글릭이 쓴 리처드 파인만의 평전 <천재>(승산, 2005)다. 제임스 글릭은 명저 <카오스>로 나를 포함해 많은 물리학도를 비선형 동역학과 카오스 이론의 세계로 빠뜨린 특급 과학저술가로서, 이 책에도 그의 맛깔스런 글쓰기 솜씨는 여전히 잘 배어 있다. 리처드 파인만에 관한 삶은 본인이 직접 쓴 책을 비롯해 여러 평전에 잘 나타나 있지만, 이 책만큼 매력적으로 파인만의 삶에 가까이 천착한 책은 없지 않았나 싶다. 한 권의 책으로 20세기 물리학의 현장을 목격하고 싶다면, 이 책만큼 생생한 다큐멘터리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천재가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잘 보여주기에, ‘영재교육’에 관심있는 부모에겐 각별히 권할만한 책이다. 최근에 출간된 책 중에 매력적인 책으로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코리브르, 2005)라는 녀석이 있다. 자서전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기록된 내 삶의 경험을 ‘자전적 기억’이라고 부르는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너무나도 생생히 기억되는 반면,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희미해지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런 자전적 기억의 수수께끼에 답하려고 시도한다.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질문,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라. 생각지 못한 답이 책 안에 들어 있다. 내가 즐겨 읽은 또 한 권의 책으로,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 2005)이 있다. 통계학적인 접근을 신봉하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남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데 가히 ‘천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 스티븐 레빗은 이 책에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사회 통념과 상식을 철저히 파괴한다. 그가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한 사회 안에서 행해지는 범죄 발생의 원인과 그 패턴이다. 누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가? 어째서 마약 판매상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백만장자로 시작하여 부모에 얹혀사는 신세로 전락했는가? 범죄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도덕과 윤리의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범죄의 감추어진 이면을 폭로한다. ‘가난한 사람은 책으로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존귀하게 된다’고 했던가! 하지만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말처럼,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이다. 2006년은 한 페이지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을 고르고 잠시 생각에 젖어보는 ‘사색적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져보시길 바란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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