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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19:03 수정 : 2005.12.30 16:17

에로스와 타나토스
조용훈 지음. 살림 펴냄. 1만5000원

인간은 왜 사랑에 집착하는가 사랑남녀·자기애·팜파탈·동성애 등 네가지 주제로 나눠 해답 찾아가기 글의 완결성·짜임새는 실망스러워

“나의 남근이 당신의 요니 속으로 들어가니/단 한번의 성교를 통해 나는 있고/단 한번의 성교를 통해 나는 없다//내가 사정하자마자 당신은 나를 뜯어먹으니/나는 온몸으로 당신 속으로 들어가/나는 당신이 아니고/당신도 당신이 아니다/당신을 뜯어먹고 태어난 아이도/당신이 아니다/당신과 나의 무덤일 뿐”(차창룡 ‘사마귀’ 일부)

똑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다. 사랑하다가 죽어도 좋아. 하지만….

김춘수…샤갈…주요한

“샤갈의 마을에는 삼원에 눈이 온다/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이/바르르 떤다./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삼월에 눈이 오면/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열매들은/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밤에 아낙들은/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전문을 들고, 시심을 일으킨 샤갈의 <나와 마을>(캔버스에 유채, 192×151.4cm, 뉴욕 현대미술관) 그림을 곁들이는 식으로, 똑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다.

그리고 “추측컨대 시인은 러시아의 비테브스크의 혹독한 바람이 3월에도 눈이 날린다는 사실에 정서적으로 강하게 경도된 것 같다. 봄에도 눈발이 날린다는 샤갈의 고향은 현실을 초탈한 듯한 이국적인 절대풍광의 한 유형으로 그에게 각인된 것은 아닐까”라고 폼나게 말하면 어떨까. 여기에 더하여 “그림은 암소와 푸른 얼굴을 한 남자가 마주보면 크게 ‘X’ 구도를 조형한다” “색채의 강렬한 대립은 초기에는 무채색을 주로 사용했던 샤갈이 정열의 파리에서 경험하며 체득한 색채의 경이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그림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피력하면…?

“샤갈은 고향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보여준 화가라 할 것이다” “주요한 역시 고향이 자신의 존재를 결정짓는 곳인 ‘요람’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집이여 나의 요람, 나의 낙원/죽어 이별한 애인의 가슴에/입 맞춘 자리가 남아있는 것같이/네 이끼 묻은 지붕으로 무너진 광까지/나이 어릴 적 발자국이 새겨 있어 (‘집이여 나의 요람’ 일부)”라고 한국문학 작품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아닐손가.


<에로스와 타나토스>(살림 펴냄)는 “문학과 그림 속에 나타난 ‘죽음과 입 맞추는 사랑’의 양상을 몇 가지로 유형화하고 그와 관계된 두 장르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주제론적으로!! 몇가지 유형이란 사랑남녀, 자기애, 팜므 파탈, 동성애 등 네 가지. ‘확실하게’ 구획·정리했다.

‘사랑남녀’의 전개를 보자.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님은 그 물을 건너시네/님이 물에 빠져 죽으셨으니/님을 어쩌란 말인가.” 한국문학의 모두를 장식하는 곽리자고의 ‘공무도하가’를 모두로 삼아 ‘죽음을 각오한 남녀사랑’ 장을 연다. 서양미술이 책의 중심이거니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이어진다. “33살의 그가 잔을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19세였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잔 에뷔테른’(캔버스에 유채, 91.4×73cm, 19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캔버스에 유채, 77×83cm). 제우스와 다나에의 합일의 순간, 즉, 죽음과 같은 사랑의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가랑이 사이로 제우스의 정랑이 쏟아지는 한편, 다나에의 오른손은 ‘무엇가’ 움켜쥐고 있고 왼손은 자위 중이다.
공무도하가에서 잔 에뷔테른으로

“잔의 흰 상의는 뒷벽의 푸른 색조와 어울려 상쾌한 인상을 전한다.” “그러나 따뜻한 니스의 태양을 축복처럼 향유하며 사랑을 즐기는 순간 죽음이 그를 방문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 잔은 6층 베란다에서 하늘을 향해 망설임없이 몸을 날렸다.” “모딜리아니는 마치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처럼 죽음을 신화적으로 초월하길 바랐고 그것을 실천했다. … 그러나 잔에게 죽음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녀가 백수광부의 아내처럼 망연자실하여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른 것은 이 때문이다. … 그렇다. 사랑은 죽음을 부른다.”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도미설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최인호의 연애소설 ‘몽유도원도’를 다리삼아 다시 서양으로 넘어간다. 펠로폰네소스 아크리시오스의 아름다운 왕비 에우리디케가 다나에를 낳았다. 그런데 다나에가 낳은 아기가 왕을 시해할 것이라는 신탁. 장성한 공주는 철탑에 갇히는데…. 아름다운 다나에와 제우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불똥이 튄다. “흐벅진 넓적다리가 자신도 모르게 제우스를 향해 절로 벌어지”고 “제우스는… 황금의 정령을 그녀의 사타구니를 향해 마음껏 벌컥벌컥 쏟아냈다.” “다나에는 사랑하면 죽음과도 같은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에로티즘에 열정적으로 탐닉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는 “이 모티프를 죽음을 부르는 독창적인 에로티즘으로 승화시켰다.” 죽음을 각오한 사랑의 예로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이야기 찍고, 귀도 레니의 <뱀에 물린 클레오파트라>로 넘어간다. “독사를 조심스럽게 쥔 그녀의 손은 마치 남성의 성기를 탐닉하듯 애욕에 젖어 파르르 떨리는 듯하다. … 이 그림은 독사를 이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적 결합으로 황홀경을 만끽하는 클레오파트라의 관능미를 최대한 부각시킨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끝으로 짜~안, 서정주의 시 ‘화사’로 화사하게 마무리.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아름다움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이냐.//꽃대님 같다/나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소리를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이하 생략)

문학작품 인용 장식 치중

애초 미술과 문학을 가로지르겠다는 야심은 점점 축소돼 서양 그림과 신화의 상관에 머물 뿐이다. 처음의 공무도하가와 달리 중간중간에 삽입한 한국의 시 작품은 이야기 전개상 아무런 구실이 없어 단순한 장식품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어지는 ‘자기애’, ‘팜므 파탈’도 대~충 이런 식이다. 어떤 곳은 글의 짜임새가 문방구에서 파는 팬시상품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다. 마지막 ‘동성애’에 이르면 관련된 관련 미술작품이 적을 뿐더러 동성애를 죽음과 결부시키는 것도 억지스러워 같은 책으로 묶은 게 머쓱할 정도다.

주제를 천착한 결과로 묶인 책이 아니라, 책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주제를 정하고 엮은 책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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