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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타나토스
조용훈 지음. 살림 펴냄. 1만5000원 |
인간은 왜 사랑에 집착하는가 사랑남녀·자기애·팜파탈·동성애 등 네가지 주제로 나눠 해답 찾아가기 글의 완결성·짜임새는 실망스러워
“나의 남근이 당신의 요니 속으로 들어가니/단 한번의 성교를 통해 나는 있고/단 한번의 성교를 통해 나는 없다//내가 사정하자마자 당신은 나를 뜯어먹으니/나는 온몸으로 당신 속으로 들어가/나는 당신이 아니고/당신도 당신이 아니다/당신을 뜯어먹고 태어난 아이도/당신이 아니다/당신과 나의 무덤일 뿐”(차창룡 ‘사마귀’ 일부) 똑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다. 사랑하다가 죽어도 좋아. 하지만…. 김춘수…샤갈…주요한 “샤갈의 마을에는 삼원에 눈이 온다/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이/바르르 떤다./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삼월에 눈이 오면/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열매들은/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밤에 아낙들은/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전문을 들고, 시심을 일으킨 샤갈의 <나와 마을>(캔버스에 유채, 192×151.4cm, 뉴욕 현대미술관) 그림을 곁들이는 식으로, 똑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다. 그리고 “추측컨대 시인은 러시아의 비테브스크의 혹독한 바람이 3월에도 눈이 날린다는 사실에 정서적으로 강하게 경도된 것 같다. 봄에도 눈발이 날린다는 샤갈의 고향은 현실을 초탈한 듯한 이국적인 절대풍광의 한 유형으로 그에게 각인된 것은 아닐까”라고 폼나게 말하면 어떨까. 여기에 더하여 “그림은 암소와 푸른 얼굴을 한 남자가 마주보면 크게 ‘X’ 구도를 조형한다” “색채의 강렬한 대립은 초기에는 무채색을 주로 사용했던 샤갈이 정열의 파리에서 경험하며 체득한 색채의 경이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그림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피력하면…? “샤갈은 고향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보여준 화가라 할 것이다” “주요한 역시 고향이 자신의 존재를 결정짓는 곳인 ‘요람’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집이여 나의 요람, 나의 낙원/죽어 이별한 애인의 가슴에/입 맞춘 자리가 남아있는 것같이/네 이끼 묻은 지붕으로 무너진 광까지/나이 어릴 적 발자국이 새겨 있어 (‘집이여 나의 요람’ 일부)”라고 한국문학 작품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아닐손가.<에로스와 타나토스>(살림 펴냄)는 “문학과 그림 속에 나타난 ‘죽음과 입 맞추는 사랑’의 양상을 몇 가지로 유형화하고 그와 관계된 두 장르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주제론적으로!! 몇가지 유형이란 사랑남녀, 자기애, 팜므 파탈, 동성애 등 네 가지. ‘확실하게’ 구획·정리했다. ‘사랑남녀’의 전개를 보자.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님은 그 물을 건너시네/님이 물에 빠져 죽으셨으니/님을 어쩌란 말인가.” 한국문학의 모두를 장식하는 곽리자고의 ‘공무도하가’를 모두로 삼아 ‘죽음을 각오한 남녀사랑’ 장을 연다. 서양미술이 책의 중심이거니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이어진다. “33살의 그가 잔을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19세였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잔 에뷔테른’(캔버스에 유채, 91.4×73cm, 19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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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캔버스에 유채, 77×83cm). 제우스와 다나에의 합일의 순간, 즉, 죽음과 같은 사랑의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가랑이 사이로 제우스의 정랑이 쏟아지는 한편, 다나에의 오른손은 ‘무엇가’ 움켜쥐고 있고 왼손은 자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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