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9 19:20
수정 : 2005.12.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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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와 시험관
에르베 디스 지음. 권수경 옮김. 한승 펴냄.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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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닭 먹으면 혀에 불이 날까
음식을 비커에 담고 초음파로 찍어 탐색한다
‘분자미식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미식학은 영양 섭취에서 인간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다루는 체계적 학문을 일컫는다. 화학현상을 설명하는 기초 재료인 ‘분자’와 ‘미식’의 관계는 물과 기름만큼이나 섞이기 어색하다. <냄비와 시험관>은 물과 기름으로 마요네즈를 만들듯, 요리를 화학·물리학 등 과학 원리로 조리해낸 책이다. 저자 에르베 디스는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와 성인교육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분자 상호작용에 관한 화학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물리화학자로, 미식가이자 국제클럽 소속 요리사다. 책 제목도 어울리기 어려운 쌍으로 이뤄져 있지만, 저자가 요리해놓은 글들은 음식과 요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저작’(咀嚼)해볼 만하다.
디스는 먼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요리와 관련한 속담과 격언들의 ‘검증’ 작업부터 시작한다. “달걀 노른자가 중앙에 오도록 삶으려면 끓는 물에 달걀을 넣어야 한다”는 요리책의 ‘비법’은 옳은가? 디스는 노른자위가 치우치는 것은 흰자위와의 밀도 차이 때문임을 실험을 통해 밝히고 있다. 정답은 “단지 끓는 물에 넣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노른자위를 쉬지 못하게 굴려야 한다”다. 요리책은 또 “끓는 물에서 10분 이내에 삶은 것이 좋다”고 돼 있다. 그러나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유대인 공동체가 먹는 ‘하민’이라는 달걀의 조리시간은 훨씬 길지만, 유황 냄새도, 노른자위 표면의 녹색 입자도 없이 부드럽다. 비밀은 섭씨 50~90도의 재 속에서 익히는 데 있다. 너무 익힌 달걀 흰자위가 ‘고무’처럼 질겨지거나, 노른자가 푸석거리는 까닭은 수분이 줄어들어서다. “요리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요리 작용을 일으키는 현상들은 곧 화학이며 물리다. 요리를 잘하려면 그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디스가 모든 속담과 격언을 곱씹어 내놓은 명제다.
디스의 두번째 검증 대상은 인체다. 왜 불닭을 먹으면 혀에서 불이 나는지, 음식이 없어도 온도 변화에 따라 단맛, 쓴맛, 짠맛이 느껴지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풀이는 ‘맛의 생리학’으로 요약된다.
세번째 장에서 음식에 대한 본격 탐색이 시작된다. 그러나 푸딩, 송어, 하몽 들은 프라이팬이나 오븐 속에 놓여지지 않는다. 대신 달걀은 초음파 촬영기로 찍히고, 소스는 비이커에 담겨 각종 화학물질과 버무려진다. 요리사들은 전통적으로 익혀온 조리법의 과학적 원리를 맛볼 수 있다. 프렌치프라이를 만들 때 생감자튀김이 냉동 감자튀김보다 기름 흡수가 적은 이유, 암소가 자라는 환경과 사료가 왜 치즈의 맛을 결정하는지, 길이가 길고 입구와 최대 지름 사이의 비율이 큰 잔이 백포도주뿐만 아니라 적포도주의 시식에도 알맞은 까닭 등이 분자 수준에서 설명된다. 섭씨 16도짜리 포도주를 23도의 실내에서 샹브레(적포도주를 저장실에서 꺼내 실내온도에 적응시키는 것)시키려면, 포도주가 잔 속에서 1분당 0.2도씩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고려해 음식이 나오기 전에 미리 따라놓는 것이 좋다는 식의 상식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디스는 화학실험실 기자재를 이용해 육수를 거르는 진공요리, 달걀을 전혀 넣지 않은 마요네즈와 초콜릿 무스 등 미래의 요리법과 인공 후각·원격 미각 등 최첨단 미식 방법을 마지막 선물로 선사한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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