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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20:56 수정 : 2005.12.30 16:20

자신의 서재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비르쇼. 어지러운 서재의 모습에서 그의 박식함과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질병 원인을 세포에서 찾은 세포병리학 “세포들 사이의 투쟁이 곧 질병” 거시적·사회적인 정치학과 결합 발진티푸스 퇴치 위한 조사관으로 나서 “병의 근본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 진단

의학속 사상/⑪ 사회의학: 루돌프 피르호

의학의 역사를 통틀어 한 사람이 이렇게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1821년 프러시아에서 태어난 루돌프 피르호(Rudolf Ludwig Karl Virchow)는 1902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포병리학의 창시자, 사회개혁가, 정치가, 인류학자, 사회의학의 원조 등 다양한 타이틀을 얻으며 명성을 날렸고, 이 모든 분야를 의학에 통합시키고자

노력한 이론가이며 행동가였다.

그가 정초한 세포병리학은 오늘날까지도 질병의 최종 진단에 없어서는 안될 개념적 도구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이는 현대의학을 이전시대와 가르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로써 막연히 몸속에 들어 있는 체액의 불균형이라 정의된 고대 의학의 질병은 그 애매성을 벗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인 세포 속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르쇼를 모든 질병의 원인을 인체의 최소구성단위로 분해하는 분자생물학적 의학의 선구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사실 베살리우스가 근대적 해부학을 굳건한 토대에 올려놓은 뒤, 질병의 자리는 간, 신장, 폐 등 눈에 보이는 장기(organ)에서 그 장기 속의 기능적 단위인 조직(tissue)으로, 그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cell)로,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세포 속의 분자와 유전자로 환원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 말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르쇼의 세포병리학은 거시적 병리학을 미시적 세포병리학으로 이어주는 연결점이었던 셈이며 거시적 맥락을 잃어버렸다고 비판받는 현대의학의 선구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의학적 업적과 사회적 활동을 추적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세포에 돌리지도 않았고 질병을 세포의 수준에서만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혈액 속에 있는 알부민이나 피브린과 같은 단백질의 불균형에서 질병이 발생한다는 신체액설과, 아체(芽體; blastema)라고 불리는 무정형의 구조물에서 세포가 발생한다는 로키탄스키(Karl von Rokitansky; 1794~1878)를 맹렬히 공격하면서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omnis cellula a cellula)" 라는 유명한 경구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모든 세포가 이전 단계의 세포에서 유래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진리로 여겨진다.


“의학은 사회과학” 주장

그의 의학사상을 환원주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 세포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에 있다. 비르쇼에게 몸은 “각각의 세포가 시민인 세포들의 국가”이고, 질병은 “몸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세포)들 사이의 투쟁”이며 “변화된 조건 속의 생명”이다. 몸은 세포들의 공화국이고 건강은 그 세포들의 민주주의가 구현된 상태이며 질병은 세포 민주주의의 파국이다.

이처럼 비르쇼 의학사상의 특징은 미시적이고 생물학적인 세포병리학과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정치학을 교묘히 결합시킨 데 있다.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학은 확대된 의학”이라고 주장할 만큼 그는 생물학적 의학과 사회적 의학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이는 20세기 후반에야 등장하는 생물-심리-사회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의 초기적 형태라 할 수도 있다. 질병의 원인을 세포라는 몸의 구성단위에서 찾기는 했지만 존재로서의 세포보다는 그 세포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질병을 스스로의 생애를 가지는 자율적 존재로 보는 시든햄의 반(半) 근대적 의학사상과 거리를 두면서도 몸을 구성하는 최소 구성단위만을 바라보는 물질적이고 환원적인 의학의 함정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체세포의 핵을 이식받는 난자 세포의 모습. 비르쇼는, 우리의 몸은 이와 같은 세포들의 공화국이며 건강은 이러한 세포들의 평등과 자유에 바탕을 둔 민주적 협동이라 했다.
하지만 그의 의학사상은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세균설(접촉 감염설)과는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균설에 따르면 질병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독립적 생명체인 미생물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세포병리학은 외부적 요인보다는 신체 내부의 세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균설이, 질병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낭만적 의학을 끌어들여,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증거에 기반을 둔 과학적 의학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이 모든 전염병의 결정적 원인으로 밝혀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세균설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사회상황과 사회적 질병의 퇴치를 위해 싸워온 비르쇼의 다양한 업적을 검토해 보면 이러한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교육·경제정책 개혁” 처방법

1848년 프러시아 정부는, 생물학적 의학의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아올린 비르쇼를 실레지아 지방에 만연한 발진티푸스의 퇴치를 위한 조사관으로 파견한다. 그곳에 3주간 머무는 동안 그가 듣고 본 가난한 자들의 처참한 현실은 본래 자유주의적 정치성향을 갖고 있던 그의 본성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게 된다. 이후 그가 프러시아 정부에 제시한 처방은 놀랍게도, 위생과 영양상태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이고 개별적인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아닌,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포함한 교육과 경제정책의 전면적 개혁이었다. 발진티푸스가 만연한 궁극적 원인은 특정 세균이 아닌 열악한 생활조건,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라고 진단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그가 어째서 그토록 세균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설사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몸에서 일정한 세균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질병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결정적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세균의 존재를 무겁게 받아들였으며 세균이 분비하는 독소가 발견되기 훨씬 전에 그 존재를 예측할 만큼 과학적 의학에 밝았지만 과학적 사실이 질병현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았다.

나치의 우생학 예견하고 비판?

그는 의학을 과학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정치적ㆍ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했다. 184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건강을 헌법적 권리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급진적이었으며, 독일 진보당의 하원의원으로서, 무력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결투신청을 받을 만큼 타협을 모르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또한 의학이 인간이 가진 예지의 최고 형식이며 모든 과학의 어머니라고 주장할 만큼 천진한 의학적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을 의학의 실천적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물학적 과학에서 윤리적 규범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과학과 윤리를 대립이 아닌 조화의 관점에서 해석한 초기 생명윤리의 모범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독일 고고인류학회를 창립하고 트로이와 이집트의 발굴에 참여하는 등 인류학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병리학자로서 사람의 골격을 다루던 경험을 살려 두개골의 기형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초등학교 학생의 두개골 모양에 대한 전국적 조사를 벌여 순수한 독일 민족의 두상(頭狀)은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대량학살을 자행한 나치가 자신들의 악행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생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내세울 것을 미리 알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강신익/인제대 교수·의철학
아무튼 비르쇼는 근대의 과학정신을 철저히 내재화하면서도 질병과 건강을 대상화하거나 객체화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조건이라는 바탕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그리고 열성적으로 실천한 위대한 의학 사상가로 기억되어 마땅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과학자와 의사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척추가 손상된 환자에게 곧 일어나 걸으리라는 헛된 꿈을 심으면서 몸속에 들어가서는 암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세포들을 몸 밖에서 기르는 과학자에게, 우리의 몸은 세포들의 공화국이며 건강은 세포들의 민주주의라는 메타포는 어떤 교훈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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