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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5 16:14 수정 : 2006.01.06 15:42

세계 지식의 ‘끝’(에지)에 다가서기 위해. ‘두 문화‘로 단절된 과학과 인문의 전통지식을 넘어서자는 취지로 ‘에지재단’을 세워 해마다 문답잔치를 벌이는 존 브로크먼.

세계물음센터 해마다 문답잔치 물음 던지고 지성들 답변 모아
새해 전날 공개…올해 10번째 과학·인문의 전통지식 틀 깨고
담론 생산 사고의 지평 확장 제3문화의 물결

새해 아침의 생각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2006년 새해를 코앞에 둔 2005년 12월31일, 닫혔던 문이 열리고 과학자들에게 제시된 물음 하나가 떴다.

그리고는 과학자들이 내놓는 ‘위험한 생각들’의 상상력이 물음과 함께 막힘없이 쏟아졌다. 몇 세대가 지나면 가상현실이 완전한 현실처럼 자연스런 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지구 생명체가 우주에서 완전히 외톨이일지 모른다는 생각, 또 어쩌면 우리의 감수성은 박테리아 섬모에서 기원했을 거라는 생각, 또 나날이 발전하는 인터넷이 자신을 인식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우리가 플루토늄을 다 이해해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는 섣부른 생각 등등…. 생각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는 선문선답형 답들도 눈에 띈다.

이 답글들의 발신자는 국내에도 이름이 꽤 알려진 미국의 쟁쟁한 과학자 90여명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총·균·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엘리건트 유니버스>의 브라이언 그린, 의 제레미 번스타인처럼 물리학, 생물학, 로봇공학, 심리학,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저술가들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세계물음센터’가 해마다 뽑은 물음에 대해 과학자들이 답글을 내놓고, 그것을 인터넷(www.edge.org)에 비공개로 모아두었다가 새해 하루 전날에 공개하는 ‘올해의 문답’ 지식 이벤트다.

이 문답 잔치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올해 10번째로, 그동안 새해 벽두 때마다 미국·유럽 언론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1997년부터 이 행사를 이끌어온 미국인 존 브로크먼(65)은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지난해 문답은 미국 <뉴욕 타임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을 비롯해 미국·유럽의 여러 언론들이 문답을 지면에 실어 크게 소개됐다”며 “지난해 9월부터 준비한 2006 문답에도 언론의 큰 관심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당신이 참이라고는 믿지만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졌고, 이에 대해 120여명의 과학자들이 ‘영혼’ ‘자아’ ‘외계생명체’ 등 갖가지 답들을 내놓았다.

‘막힘 없는 지식 게임’ ‘웅대하고도 야심찬 물음’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물음’ 따위의 찬사를 받은 문답 잔치를 해마다 벌이는 브로크먼은 누가인가?

그는 여러 과학자들을 베스트셀러 저술가로 키우며 명성을 얻은 세계적 저작권중개업자(‘브로크먼’ 에이전시 대표)이자 국내에서도 출간된 <디제라티>(황금가지)의 저자다. 또 1988년 현대 과학이 이룬 세계 지식의 ‘끝’(edge.에지)에 다가서기 위해, ‘두 문화’로 단절된 과학과 인문의 전통지식을 넘어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 곧 ‘제3의 문화’를 이룰 것을 주창하는 비영리 ‘에지재단’을 세웠다. ‘올해의 물음’은 이런 제3문화의 하나로 계속돼왔다.

그가 말하는 제3문화는 현대과학에 바탕을 둔 사고의 새로운 지평을 추구한다. 전통 넘어서기라고 한다. “전통적 미국 지성인들은 어떤 점에서 정말 중요한 우리 시대의 지적 성취를 무시하고 과학을 무시한다”며 “반면에 경험세계의 과학자들과 사상가들로 이뤄지는 제3문화는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하고 우리 삶의 더 깊은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전통 지성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과 인문이 어우러지는 제3문화가 가능해진 것은 현대 과학에서 진화생물학, 유전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물리학 등이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생명·우주·인간 등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해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출판인 브로크먼의 자산은 1980년대부터 우연하게 시작해 전문적 직업으로 삼은 과학도서 기획과 저작권 중개를 하며 자신과 함께 성장해온 여러 과학자들, 그리고 그들과 주고받으며 키워온 제3의 사고방식들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인용해 “(브로크먼의) 에지 웹사이트는 과학자를 위한, 그리고 과학에 관심을 둔 지식인을 위한 온라인 살롱”이며, “존 브로크만은 가장 탐낼만한 (저명 과학자들의) 주소록을 지녀 다른 사람이 따라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과학과 과학도서 활동을 촉진하는 데 이를 이용한다”고 소개했다. 브로크먼은 또 “지식의 편집자” “지식의 효소” “지식의 지휘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에지 물음은 미신이나 근본주의에 맞서 미국 과학계 지성이 벌이는 ‘신 계몽운동’과 같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지난해 말 영국 잡지 <옵저버>는 문답에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이 미국 과학자라는 점을 들어 이런 이벤트가 새로운 사고방식을 열겠다는 ‘신성 네오콘 제국’에 의해 운영된다고 평했다.

어떤 물음을 던지느냐에 따라 어떤 답이 나올지 그 윤곽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현명한 답 못지 않게 현명한 물음 역시 몹시 중요하다. 에지 문답이 과학자들에게 그들이 이룬 과학 지식의 성과 위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이며, 우주는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마음이란 무엇이고 진화란 무엇인지, 그리하여 결국에 과학 지식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답하게 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담론의 풍성한 샘물이 되고 있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에지재단 제공

Q.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브라이언 그린(이론물리학,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주의 구조>(승산))=여러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생각, 우리는 ‘우주들’(multiverse)이라 불리는, 광대한 우주(universe)의 집합 가운데 하나일 뿐일지 모른다는 생각.

리처드 도킨스(생물학,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조상 이야기>(까치))=차가 고장나면 차를 탓하는 것처럼 잘못된 비난과 책임 덮어씌우기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더 진실에 가깝게 분석하는 일을 그만두고 지름길로 가는 수단으로 만들어낸 의도적 허구라는 게 나의 위험한 생각이다.

로드니 브룩스(로봇공학, <로봇 만들기>(바다출판사))=내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비생명체가 생명체로 바뀌는 자발적 변형이 극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것이 (지구에서) 단 한번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수십년 안에 그것이 매우 희귀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여러 증거들을 얻는다면 어찌될까. 우리는 우주에서 완전히 외톨이 생명체일까.

다니엘 데넷(과학철학, <다윈의 위험한 생각>)=우리는 정보 홍수 속에서 익사하거나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익사한다면, 우리는 정보 과식에 의해 심리적으로 압도돼 희생될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정보 과잉 앞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익사하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선조들과는 아주 아주 다른 존재가 돼 있을 것이다.

로렌스 크라우스(물리학, <외로운 산소 원자의 여행>(이지북))=세계는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제레미 번스타인(물리학, (바다)·<히틀러의 우라늄 클럽>)=가장 위험한 생각은 우리가 플루토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왜 작용하며 얼마나 안정적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한한 미래에 안전하게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에른스트 푀펠(신경과학, <마인드워크>)=과학에 대한 나의 믿음이 위험한 생각이다. 나는 과학 활동과 결과를 기본적으로 믿지만, 거기엔 실험에서 통제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변수들이 또한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셰리 터클(심리학, <스크린 위의 삶>(민음사))=컴퓨터 문화 안에서 살며 몇 세대 지나고 나면 시뮬레이션은 완전히 자연스런 일이 될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진정성은 가치를 잃어 한 시대의 흔적으로 남는다.

하워드 가드너(심리학, <체인징 마인드>(재인) <다중지능>(김영사))=나의 위험한 생각은 (인간의) 도덕 정신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 즉 권력욕이나 즉흥적 만족, 적의 절멸 같은 다른 동기들에 의해 도덕정신이 동원되거나 압도될 수 있다는 것.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심리학, <몰입의 즐거움>(해냄) <플로>(한울림))=정치경제가 다른 어떤 가치에 앞서 자유시장을 만능해결책으로 지니고 있다는 생각. 그게 위험한 것은 자유시장이 일부엔 해택을 주지만 대다수엔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는 지성적이고 정치적인 사기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핀커(심리학,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사이언스북스))=평균 능력과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마다 집단마다 유전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다음 십년 동안 위험한 생각이 될 것이다.

리처드 리스벳(심리학, <생각의 지도>(김영사))=우리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존 앨런 파울로스(수학, <수학자, 증권시장에 가다>(까치)·<수학 그리고 유머>(경문사))=‘초자연적 존재는 있을까’ 하는 의문은 진부하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우리는 존재할까’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지닌 약간 통일적 실체, 그 이상의 어떤 존재일까.

린 마굴리스(생물학,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섬모를 이용해 박테리아는 먹이를 향해 헤엄치고 유해한 가스를 피해 헤엄친다. 뜨거움을 피하고 불빛을 좇는다. 그래서 우리 감수성은 박테리아 조상의 감각 섬모에서 직접 진화했다는 생각, 그래서 박테리아는 우리의 친구나 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생각.

다니엘 힐리스(물리학, <사이언스 북>(공저, 사이언스북스))=우리 모두가 가장 위험한 생각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

2006 올해의 문답 (자료: 에지재단 ed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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