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05 17:42
수정 : 2006.01.06 15:44
역사로 보는 한주
BC(기원전) 49년 1월10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명 줄리어스 시저)가 마침내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주사위는 던져졌다!”였다.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 등의 다른 버전들도 있다지만, 어쨌거나 ‘루비콘 강을 건넜다’나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은, 실제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돌이킬 수 없는 극적인 상황전개를 가리킬 때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두루 쓰이고 있다. 여기에 그가 BC 47년 중동의 젤라전투에서 폰투스의 파르나케스 2세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본국에 보냈다는 승전보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BC 44년 피살 당시 부르짖었다는 “브루투스, 너마저!”(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는 그렇게 나와 있으나,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 책에는 “아들아, 너마저!”로 돼 있고, 실제로는 아예 그런 얘긴 없었다는 설도 있다)까지 보태면 카이사르의 극적인 인생, 그리고 서양인들 머리를 장악하고 있는 그의 무게를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다.
루비콘 강은 이탈리아 반도 동북부 지금의 볼로냐 남쪽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크지 않은 강이었는데, 지금도 그 인근 리미니 북쪽에 루비코네라고 하는 강이 있으나 2천여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강의 흐름도 적잖게 바뀌어 그때 카이사르가 건넌 정확한 장소를 알 수는 없다. 그 강은 당시 로마와 그 속령인 갈리아 키사르피나를 가르는 경계선이었고 로마 북쪽 방위선이어서, 군대를 이끌고 이 강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었다.
카이사르는 BC 60년 중동지역을 평정한 장군 폼페이우스와 집정관에 뽑힌 뒤 경제계를 대표한 크라수스와 함께 3두체제를 형성하고 BC 58년에 갈리아의 키사르피나와 트란사르피나 속주 총독이 됐다. 그 뒤 그가 갈리아 원정에 나서 오늘날 독일땅인 게르마니아와 영국섬까지 정복하고 유럽지형의 토대를 쌓으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사정은 그의 <갈리아 전기>에도 나와 있다. BC 53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왕국을 공략하다 전사한 뒤 3두체제가 무너지자 원로원과 손잡은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의 총독지위를 박탈하고 본국소환령을 내리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소환령에 응하든 불응하든 존망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된 카이사르는 소수 기병과 4천-6천 명의 보병으로 이뤄진 1개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는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의 군대는 2배가 넘는 보병 등 압도적인 군사력를 거느리고 있던 폼페이우스군을 그리스, 스페인,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전광석화처럼 유린했고 BC 45년 내전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영구 독재관이 되고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까지 석권한 그의 눈부신 성공이야말로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는 그 다음해 권력의 1인 집중으로 공화정이 위태롭다고 느낀 브루투스 등의 손에 암살당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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