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찻집
말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어색할 때가 많다. ‘어떤 수치나 기준에 이르다’란 뜻으로 ‘달하다’를 쓰는데, 설명글에 흔하고 말할 때도 이따금 쓴다. △최근 새로 입주한 서울·수도권 주상복합 상가의 평균 공실률은 30~40%(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2002년 이후 분양된 상가는 2000여개 정도인데, 이 중 점포수가 100개가 넘는 대형 쇼핑몰만 150곳(에 달한다.) △사실상 파산 상태이거나 파산 신청 가능성이 높은데도 파산 신청을 하지 않은 잠재 파산자가 최대 1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의 화두로 고유가를 꼽은 경제인들이 13명(에 달했다.) 주로 앞에 든 수치에 이른다는 말인데 부풀리는 맛이 있으나, 그 쓰임이 맞같지 않다. 한자 ‘達’에 뒷가지 ‘-하다’를 붙여 만든 말로서, 판박이 한문투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이처럼 외자로 된 한자말에 ‘-하다’를 붙여 쓰는 말이 꽤 된다. ‘귀하다·정하다 …’처럼 익어서 바꾸기 어려운 말도 있고, 적절한 토박이말로 뒤칠 것도 많다. 보기월들에서 쓰인 ‘달하다’는 모두 ‘이르다’로 바꿔 쓸 말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말투가 있다. △운명의 경각에 달하다 △오만의 극에 달하다 △번영의 극에 달하여 △절망의 극에 달하여 △흥분의 극에 달하여 …. 어떤 한계점에 이른 것을 과장하여 이렇게 나타내는데, 사개가 맞지 않아 삐걱거린다. 우선 ‘의’ 쓰임이 낯선데, 그 자리엔 주격 ‘이’가 걸맞다. ‘달하다·달하여’ 역시 ‘이르다·이르러’ 맛에 못미친다. 질낮은 은유로 칠 수도 있겠으나 실은 가끔 보는 일본말투다. 이에 물들어 요즘은 영어까지 이렇게 뒤치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이런 문장을 보면 좀 낯선 맛이 있어 따라 써봄직한 문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한번 들인 버릇은 하루아침에 버리기가 쉽잖다. 그 버릇이 번역문투를 늘려가는 장본임을 깨달아야 한다.위의 말들은 그냥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다급한 상황에 이르러 △몹시 오만해져서/ 오만이 지나쳐/ 오만이 하늘을 찔러/ 오만이 극도에 이르러 △매우 번영하여/ 더할 수 없이 번영한 끝에 △몹시 절망하여/ 절망하다 못해 △몹시 흥분하여/ 흥분하다 못해/ 흥분이 지나쳐 …”처럼 걸맞은 다른 표현으로 바꿔 쓸 수 있다. 한편, 저런 문투를 굳혀 쓰다 보면 그 사이에 뜻이 덧붙어 더는 고칠 수 없게 되는 폐단이 생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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