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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5 18:54 수정 : 2006.01.06 15:48

젠틀 매드니스
N. A. 바스베인스 지음. 표정훈·김연수·박중서 옮김. 뜨인돌 펴냄. 4만8000원

책 차지하려 8명 살해한 한 수도사
죽을때 여덟 채 가득 책 남긴 히버
2만3600권 훔친 블룸버그…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지면에
책수집 역사·수집가의 열정 등 풀어놓아

책에 미친 사람들한테 수집거리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이 책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펴냄)이니, 수집광 그들에 관한 얘기다.

책은 니코틴과 같아서 한두 번 재미로 시작해 중독된다. 1000권에 이르면 제법 모았다고 생각하지만, 5000권에 이르면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욕심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면 책들은 스스로 방향을 잡아간다. 목표가 부여된 순간부터 콜렉션에는 품위가 생겨난다. 처음에는 그저 즐겁고 여유있는 취미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격정과 맹렬한 욕망으로 타오른다.

신사의 도서관엔 3천권이 알맞아

사망 당시 여덟 채 가득 책을 남긴 리처드 히버(1773~1833). 방, 벽장, 복도, 회랑 할 것 없이 두세 겹 책으로 차 있었다. 경매로 책을 처분하는데 자그마치 5년이 걸렸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고서가 탐나 그것을 소유한 여인한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곱게 미친 편. 1830년대 에스파냐 전직 수도사 돈 빈센테는 책을 수중에 넣으려 서점주인, 사제, 시의원, 시인, 판사 등 8명 이상을 살해했다. 피살자가 갖고 있던 유일본이 그의 책더미에서 발견되면서 체포됐다. 변호인이 똑같은 책을 한권 더 찾아내 범인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하자 소리쳤다나. “내가 가지고 있던 게 유일본이 아니라니….” 그는 모파상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밥티스트 보다 데몰랭. 어느 날 마지막 남은 푼돈을 가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다락방을 나섰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어느 서점 창문을 통해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음식이냐, 책이냐, 주저않고 책을 사서 다락방으로 돌아오는 그는 너무도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굶어죽었다.

수집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재산이 넉넉하고, 안목이 있어야 하며, 자유로워야 한다. 미국의 수집광 레싱 J. 로젠월드는 자기만의 분야에서 주제를 정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움직여야 하며, 기회가 찾아오면 결코 놓치지 말고 끊임없이 감식안을 기를 것을 주문한다.


“나는 모든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에서도 첫째 가는 바보라네/소중한 책을 영원히 간직하며 계속 늘려나갈 작정이네/본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이것만이 나의 기쁨이라네/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풍족하게 누리건만/그것들로부터 지혜를 얻은 적은 없다네.” 15세기 말 독일시인이 조롱한 ‘책바보’는 경계할 일이다. 그래서 영국 새뮤얼 피프스(1633~1703)는 3000권이 신사의 도서관에 가장 알맞은 숫자라고 보았다. 40년 동안 그 범위 안에서 책을 사고 필요없는 책을 처분했다.

서재는 거울이라고 했다. 결과물뿐 아니라 수집행위 자체도 그렇다. ‘포크너’ 수집가 브로드스키. 작가 지망생인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포크너의 책과 원고를 모았다. 그를 흉내내어 소설을 썼지만 자기 분야가 아님을 깨닫고 시로 전환해 시집 33권을 냈다. “나는 한 사람의 작품을 수집한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의 작품이다. 하나는 이미 성공을 거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족적을 남기기 위해 애쓰는 사람, 루이스 대니얼 브로드스키였다.” 이 정도면 수집광으로는 성공한 삶이다.

아파트 17채에 자료 꽉 채운 요리사

1494년 독일 시인 제바스티안 브란트가 지은 <바보들의 배> 가운데 ‘서치’ 삽화.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 야윈 얼굴에 두툼한 안경을 쓴 서치가 좁은 서가에 갇혀 깃털 먼지떨이로 조심스럽게 먼지를 떨면서 책장을 넘기는 모습. 서치는 책의 내용보다 삽화나 장정, 얼룩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다.
지은이 바스베인스는 5년에 걸쳐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도서 수집의 역사, 수집가의 열정, 그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2부에서는 ‘미친 사람들 컬렉션’으로 걸어들어가 그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1950~1975년 출간된 에로소설 2만권, 도색잡지 1만권, 음란사진 5만5000점 등을 모은 텍사스대 법과대학 진먼 외설물 콜렉션. 고서점에서 쓰레기로 인수받아 골칫거리였던 게 당당한 역사의 기록으로 자리매김됐다.

후발주자로 시작해 13년만에 하버드, 예일, 뉴욕공립, 헌팅턴 도서관과 같은 반열에 오른 텍사스대학 도서관. 그 뒤에는 해리 헌트 랜섬 총장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귀중한 것들은 스스로 자리를 잡아가게 마련이라는 신념으로 모든 영역에서 자료를 모았다. 남들이 쓰레기라고 하건 말건. 그 뒤에는 뛰어난 서적중개상이 있었다.

뉴욕 공립도서관 아렌츠 콜렉션은 조지 아렌츠 2세(1885~1960)가 모은 것으로 담배와 관련된 서적, 원고, 정기간행물, 소책자, 그림, 판화, 스케치는 물론 담배카드 12만5000점도 포함돼 있다.

요리사이자 식당경영인 루이스 사트마리. 40년 전 빈털터리로 건너온 헝가리인. 읽기 위해, 그냥 갖고 싶어서, 언젠가는 참고가 될 것 같아서 모은 자료가 아파트 17채 31개 방에 그득했다. 요리법 자료는 아이오와대 도서관에, 헝가리학 관련 1만2천점의 자료는 시카고대학에, 메뉴콜렉션은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학에, 헝가리 문학서는 인디애나 대학에 기증했다. 기증 뒤에는 물론 금단증세를 보였다.

200년간 도서관 268곳서 훔쳐

아무래도 압권은 훔친 책 2만3600권으로 꾸렸던 블룸버그 콜렉션. 1948년생인 스티븐 캐리 블룸버그는 20여년 동안 미국 전역의 도서관 268개소를 돌며 희귀본을 훔쳐모아 ‘연합도서관’을 꾸몄다. 자그마치 19t, 12m짜리 트레일러 2대 분량의 책이다.

그는 품이 넉넉한 옷 안쪽에 꿰매어 붙인 커다란 주머니에 책을 숨겨 가지고 나왔다. 나중에는 엘리베이터와 트럭을 썼다. 대학 조교수의 신분증을 훔쳐 신분을 사칭하면서 수집도서의 질을 한단계 높였다. 80권에서 출발한 그의 목표는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완벽한 콜렉션을 꿈꾸게 되었다. 훔친 책 대부분이 거의 활용되지 않은 사실에서 절도철학도 확립됐다. “책은 일종의 보관소 역할을 한다고 봐요. 따라서 그 안에 든 지식이나 예술은 마땅히 누군가에게 향유되어야 하는 것이죠.” 웃기는 것은 도서관의 사서들은 자기네가 무슨 책을 털렸는지 몰랐다는 사실. 대부분 블룸버그 콜렉션에 와 보고 “어라, 이 책이 여기 와 있었네?”라고 말했다. 장물 콜렉션은 블룸버그가 잡히면서 해체됐다.

책은 내용도 그러려니와 몸피 역시 1000쪽이 넘어 맛이 간 사람이 만든 표가 난다. 미치지 않고야 집기 어렵고 손에 잡는 순간부터 미친 부류에 속하게 되니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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