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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5 20:17 수정 : 2006.01.18 16:11

후지어 패스에 오른 나. 높이 11542 피트(3462m)의 후지어 패스를 푸에블로에서 출발한 지 사흘만에 예정대로, 그리고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한 지 50일째에 올랐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3)


다행히 캐롤린 사우스와 헤어진 이후 트레일은 험난하지 않았다. 때로는 시속 20㎞까지 내면서 하트셀로 달려갔다. 9번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53번 길로 갈라지는 지점에 하트셀 스프링스 목장(Hartsel Springs Ranch)이라는 건물이 보였다. 트레일 지도에 따르면 호스텔이 있다는 목장이다. 간이건물처럼 생긴 곳 안으로 들어가서 일단 물부터 한 대접 받아 들이킨 뒤 여기서 하룻밤 묵어도 되냐고 물었다. 제니라는 이름의 직원은 피식 웃으면서 여긴 사무실이라고 말했다. “아니 지도에 따르면…” “아, 그거.” 그는 이전에 오두막집 형태의 모텔을 다른 곳에 운영했지만 지금은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앞기어 고단으로 놓고 쉼없이 밟았다
꼭대기가 싱겁다
내내 고통스럽던 어깨 통증이 가셨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병이었나 보다
여행 시작 50일째…이젠 나를 믿자

작은 마을인 하트셀에는 다른 숙박시설이 없고 다음 마을인 페어플레이(Fairplay)까지는 36㎞를 더 가야 한다. 체력이 고갈돼 갈 수 없다. 절망한 내 표정을 읽은 제니는 “지금은 버려진 그 오두막집에서라도 잘래?” 라고 물었다. 두말이 필요 없다.

그 오두막집은 트레일에서 3.6㎞ 떨어진 호숫가에 있었다. 예전에는 호수의 바닥이었을 것 같은 거친 들판에 있었다. 현관문이 떨어져 나갔고 방 두 개, 부엌, 화장실이 있는 집 안에는 파리가 들끓었다. 집 밖에는 제비와 같은 새들이 휙휙 날아다니며 파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발로 나갈 리가 없는 파리들은 나한테 몰살 당했다.

고도 3천m 가만있어도 머리 지끈


괴이한 것은 큰방 문고리와 부엌의 문고리 사이에 살인사건이나 교통사고가 났을 때 출입통제선으로 쓰이는 노란 테이프가 쳐져 있다는 점. 그래서 문들이 닫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죽여도 새로운 파리들이 문틈으로 들어온다. 큰 방에는 옷가지들이 두 개의 침대와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이런 흉가가 없다. 물을 마시려고 수돗물을 트니 녹물이 나온다. 그런데 뜻밖에 욕조에서는 온수가 나왔고 전기 오븐도 있고 냉장고도 작동하고 있다. 대충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왜 겉으로는 멀쩡하고 내부시설도 잘 돼 있는 이 오두막집이 버려져 있을까. 창가에는 핏자국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놀라서 일어나 자세히 보니 내가 죽인 파리들에서 나온 피다.

해발고도 3천m. 백두산보다 높은 고원이다. 산소 부족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고 머리가 무겁다. 생각하기 싫다. 여기서 누가 살해됐든, 칼부림이 났든, 자살을 했든, 허허벌판 한 가운데, 문이 있든, 없든, 침대가 더럽든, 깨끗하든, 상관없다. 내 등을 누일 한 평 반의 면적만 있으면 그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앉아서 어제 먹다 남은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고 있는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한 남자가 불쑥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혹시 그의 집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제 제니가 여기서 자도 된다고 했다”고 더듬더듬 말하니까 브래드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커피 필터를 찾으러 온 것일 뿐”이라면서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1번 오두막집으로 오라고 했다. 내가 있는 곳은 3번 오두막집이다.

1번 오두막집은 안온했다. 라디오도 틀어놓아 도시의 소리들이 흘러나왔고 난로도 켜져 있었다. 여긴 여름에도 밤에는 섭씨 5, 6도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커피가 다 끓었다. 브래드는 하트셀 스프링스 목장에서 일하는 인부다. 어제는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다고 한다. 그래도 돈은 시간당 10달러씩 8시간만 쳐서 준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그가 일하는 목장은 2만8천 에이커의 땅을 보유하고 있고 600 마리의 아메리카 들소를 키우고 있다. 그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땅까지 포함하면 이 목장에 속한 땅이 60만 에이커(2428㎢)라고 했다. 그는 주중 밤늦게까지 일할 때 이 오두막집에 머물고 보통은 애인이 있는 근처 마을에서 출퇴근한다고 했다.

이 목장은 사냥꾼들에게 들소를 잡도록 해주고 한 마리 잡는데 600달러(60만원 상당)를 받는다고 했다. 한 마리의 몸무게가 보통 680㎏에서 1360㎏ 하니까 매우 싼 편이다. 그리고 정육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 파운드당 15 센트씩 받고 고기를 떠준다. 일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간, 천엽과 같은 내장은 다 버리고 고기만 뜨는 데 그냥 먹으면 너무 써서 몇 일 걸어놔야 한다.

그는 어제 잡은 고기를 보여주며 자전거 타고 가면서 말려가며 먹지 않겠느냐며 한 덩어리를 꺼냈다. 저걸 말리면서 뜯어 먹고 가면 그런 쪽에서 세계 최초의 라이더가 될 것이다. 정중히 거절했다. 이곳에는 들소 고기가 흔하다. 어제 카페에 들렀을 때도 들소 고기 햄버거 메뉴를 봤다.

직원들에게는 1년에 두 마리씩 공짜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브래드는 바로 어제 두 마리를 잡았다. 들소 사냥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들소를 좇아 다니거나 숨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냥 차를 타고 들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맘에 드는 들소를 고른다. 다가가서 들소의 귀 밑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때까지 들소가 가만 귀를 대주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들소의 문제점은 총을 맞고 난 뒤에 생명력이 발휘된다는 데 있다. 명이 질겨서 어제는 한 마리 잡는데 6발을 쐈다고 한다. 처음엔 왼쪽 귀 밑에 한발, 끄떡도 안 해서 연달아 3발을 더 쐈고 그래도 안 죽어서 방향을 바꿔 오른쪽 귀 밑에 한 발, 그래도 안 죽어서, 결국은 미간에 한발을 쏴서 쓰러뜨렸다고 한다.

갓잡은 들소 고깃덩이 제의에…

원래 들소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의식주였다. 들소 가죽으로 천막 집인 티피와 옷을 짓고 뼈로 도구를 만들었다. 특히 농토가 전혀 없던 이 일대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우테(Ute)에게 들소는 밥줄이었다. 함부로 잡지 않았다. 그러니 백인들은 직접 인디언들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총으로 들소를 마구잡이로 도살하면서 인디언 삶의 원천을 없애버렸다. 지금은 들소를 키우면 나라에서 보조금을 준다고 한다. 이건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하트셀에서 페이플레이까지 36㎞는 너무 쉬워서 약간 맥이 풀렸다. 그러면서 다리의 긴장도 풀어졌다. 앨마(Alma)까지 10㎞ 구간도 쉬웠다. 눈 덮인 산은 점점 더 다가온다. 고원 지대에 흐르는 시내는 평평한 곳을 헤치고 가는데도 물살이 세차다.

피로와 허기에 지쳐 들어간 콜로라도 주 하트셀의 버려진 오두막집 안에는 노란 테이프가 쳐져 있어 마치 범죄 현장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후지어 패스로의 도전은 결국 마지막 6.4㎞ 구간으로 압축됐다. 사정없는 오르막길이다. 갓길이 손바닥 한 뼘의 폭으로 줄어들고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지금까지 애팔래치언 산맥을 오르면서, 알레게니 산맥을 넘으면서, 오자크 고원을 지나면서 키워온 근육과 쌓아온 라이딩 기술을 총동원하리라.

20여년전 딸이 횡단한 길따라

앞 기어를 중단이나 저단으로 내리지 않았다. 고단으로 버텨볼 작정이었다. 그러다 안 되면 기어를 내리는 한이 있어도 일단 내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시험해보고 싶었다. 중간에 멈춰 쉬지도 않으려고 했는데 도중에 사진을 찍기 위해 한번 자전거에서 내렸다. 부근에 있는 마운튼 링컨에서는 검은 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빨리 먹구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맘이 급하다.

자전거에 올라타 갈 길을 재촉하는데 맞은 편에서 내려오는 라이더를 만났다. 그냥 가버릴까 하다 자세히 보니 누워서 타는 자전거인 리컴벤트를 타고 온다. 뉴욕 주 시라큐스에서 온 63살의 브루스 쉬케르트(Bruce Schechert). 오리건 아스토리아에서 6월3일에 출발, 비교적 짧은 거리인 하루 80㎞씩 타면서 미국을 횡단 중이다. 그는 내가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서 출발했다고 하니까 “동과 서가 만났군”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그는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천천히 달리는 것은 빨리 달리는 것 못지 않게 힘들다. 일단 안장에 올라타면 계속 달리고 싶어진다. 그는 천천히 달리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내리막길로 질주하는 도중 자전거를 세워서 풍경사진 찍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내려가줘야 관성의 힘을 이용해 오르막길을 쉽게 올라가는데 그는 그 역학을 뿌리치면서까지 천천히 가고 있는 것.

버려진 오두막집서 1박
출입통제 노란 테이프
문짝 안맞아 삐걱삐걱
칼부림이 났든 자살을 했든 상관없다
한평반 누일 공간만 있다면

그의 횡단여행 동기는 더 근사하다. 1982년 그의 딸이 대학 졸업 기념으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횡단했다고 한다. 그 때 그는 딸과 함께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기술 담당 매니저로 일하다가 은퇴한 지금에서야 그 아쉬움을 풀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딸이 남긴 여행일기를 읽으면서 23년 전 딸의 행로를 답사하고 있다는 점. 와이오밍 주에서는 딸이 지명은 안 밝히고 데이라이트 도넛(Daylight Doughnut)이라는 가게에 들렀다고 썼는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 눈을 들어보니 데이라이트 도넛이라는 간판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고 했다. 이렇게 23년의 시차를 두고 딸과 함께 여행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23년 동안 강산이 많이 바뀌어서 딸의 종적을 확인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의 리컴벤트는 차체만 250만원의 고가품. 고개를 올라갈 때는 안장에서 일어서서 페달을 밟을 수 없어 힘들지만 내리막길에서는 공기저항이 적어 일반 자전거보다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그와 헤어진 뒤 얼마 안 있어 U자 표지판이 보이고 그 턱을 넘어서자 후지어 패스가 나타났다. 처음 만나는 미 대륙 분기점이기도 하다. 물방울이 떨어져 동쪽으로 튀면 대서양으로 가고 서쪽으로 튀면 태평양으로 간다는 그 지점이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주위에 보다 높은 산들이 둘러쳐 있어서 11542피트(3462m)의 고지에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상이 아니라 툭 터진 산마루다. 약간 허탈했다. 지금까지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의 정점을 넘기 위해 마음 졸인 게 다 풀어졌다. 기분 좋은 실망이다.

길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기어를 고단으로 놓은 채 정점에 올랐다는 것은 내 몸이 그 동안 강해졌다는 뜻이다. 신기하게도 그 동안 내내 고통스러웠던 오른쪽 어깨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어깨의 통증은 진짜 아파서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의심의 신호였던 것이다. 그게 진짜 아픈 건지도 모른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병. 그리고 보니 오늘이 여행 시작 50일째다. 이제서야 그 병을 고친 듯하다.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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