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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와 라면은 요리일까?
전통 요리사는 분식을 요리로 생각하지 않아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주 비슷한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튀어나온 못은 맞는다'라는 속담입니다. 조직과 전체주의를 우선시하는 이 동양권 문화에서는 개성이 살아숨쉬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국어를 和語라고 하고 자신들의 음식을 일식이라 하지 않고 和食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융화와 조화가 사회 전체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인 것입니다.
‘튀어나온 못은 맞는다’라는 속담
언제부터인가 귀여니가 참 큰 인물로 부각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전에 소설가 한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도 귀여니에 대해 알고 있더군요. 그리고 무척 부정적인 어투로 그것도 소설이냐란 표현을 거침없이 하시더군요. 본인의 딸도 그런데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첨언을 곁들이면서요. 한마디로 그걸 보는 애들은 수준이하라는 식이었죠. 나름대로 이해는 갔습니다. 과거의 소설 방식으로 본다면 어느 하나 제대로 그것을 그려낸 것이 없기에 소설로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죠. 게다가 그 소설가분이 수십년 책을 냈어도 귀여니만큼 팔진 못했으니깐요. 그런데 의외로 독자들에게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독자라고 해봐야 모두 10대 소녀들이죠. 그녀들은 미친 것일까요?
귀여니의 첫책은 10여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판거부를 당했다
귀여니의 첫책은 10여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판거부를 당했습니다. 기획자나 편집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모티콘이나 내용들이 외계인의 언어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미 인터넷에서 당시 첫책이 나올 시점에서도 2년이나 지났고 웬만한 네티즌들은 다 보아서 책으로 내도 상품성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책으로 나오자 반응은 180도 달랐습니다. 그 이후로 인터넷 소설이란 코너가 생기며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책이 나오고 글쓰는 10대들이 등장했습니다. 또 다시 아프리카란 시집으로 귀여니의 존재감이 느껴지네요. 교보문고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는데 교보문고 외곽을 두바퀴나 돌 정도로 팬들이 줄을 섰답니다. 팔이 아파서 겨우 천명만 해주고 팬사인회를 마쳤다는 전설적인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우리보다 한술 더 떠 영웅처럼 대접을 받는다는군요. 중국에서도 귀여니 영향으로 인터넷 소설이 붐이랍니다. 아프리카란 시집을 본 적도 없고 귀여니도 잘은 모르지만 과연 지금의 비판과 비난이 냉정한가는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출판사에 도배도 하고 불매운동까지 벌인다고 하는데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시에 관심을 가졌다고 시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지 막연한 시라는 영역에 기대어 이건 시고 저건 시가 아니라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전통적 영역의 시에서 바라보는 기준으로는 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출판사는 시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독자를 우롱했으니 얼마나 천벌을 받아야 할까요? 떡볶이와 라면은 요리일까?
전통 요리사는 분식을 요리로 생각하지 않아 여러분, 떡볶이와 라면은 요리일까요? 전통 요리사들은 그런 분식을 요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0대, 20대들에게는 어떤 음식보다 맛있습니다. 심지어 20대 여성까지 통털어 조사한 식비용 지출비 내역중에서도 분식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비싸지 않지만 자주 찾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럼 떡볶이란 음식을 파는 곳은 음식점이란 간판도 내려야 하고 불매운동까지 당해야 되나요? 맛없다고 생각하면 안 찾으면 그만입니다. 마치 떡볶이 장사가 잘 되니 저게 요리야라고 트집잡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귀여니 책이 잘 팔린 이유는 10대들의 고민과 감수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표현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어떤 소설가가 그녀들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을까요. 그런 책이 팔릴거란 계산도 없고 의식도 전무합니다. 왜냐하면 10대들에게 책은 교과서 혹은 참고서뿐이었고 출판사들도 그 시장은 아예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예전부터 하이틴 소설과 시집들은 존재했습니다. 그뿐인가요. 10대들 우상이라고 여겨지는 가수들의 노래는 어떤가요? 그게 노래입니까? 가사는 한 없이 유치하고 곡은 어디서 들은 듯한 느낌이 나는... 그렇지만 누구나 겪었을 10대란 시절엔 의미있는 노래이고 가수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귀여니를 이해한다면 그렇게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귀여니 문제는 정작 본인에게 있을 겁니다. 귀여니 책이 잘 팔린 이유는? 10대들의 고민과 감수성을 대변 연예인같은 존재로 떠올랐지만 언제까지 그녀도 10대일 수 없고 그런 감수성을 유지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마 진일보한 글쓰기에 스스로도 부담과 도전을 지울 수 없을테니깐요. 국내 대학가 도서관 대여 순위를 보면 일본 소설이 대다수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2004년 서울대 대학도서관 대출 종합 순위 20위까지 중 일본 소설이 무려 8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5종이었고 고려대 도서관의 20위까지 대출 순위에도 8종, 서강대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출 목록에는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와타야 리사 같은 일본 작가들이 서너 작품씩을 순위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도 2004년 1~8월 대비 올해 같은 기간 일본 소설은 종류와 매출액 모두 130% 성장했다고 합니다. 대학 도서관 책 대여 순위 상위에 일본 소설이 오르는 이유는 뭘까? 국내 소설이 안 읽히는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하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귀여니 사건도 바로 그런 사회의식에 있다고 봅니다. 10대들을 위한 하이틴 시, 이렇게 이해하는 게 무리일까요. 정작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 시는 외면하면서 말이죠. 일본소설의 유행에는 10대 말 20대 초반 작가들이 즐비하고 그것을 이끄는 것이 바로 일본의 문예상입니다. 심지어 올해 수상작은 중3 여학생 미나미 나쓰의 헤이세이 머신건즈랍니다.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한…한해 6천만 폐기처분된다 국내에 한해 총량기준으로 약 1억2천만권의 책이 출판됩니다. 그리고 6천만권의 책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폐기처분됩니다. 읽히지 않는 책은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의 주범입니다. 오늘도 신문에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 제작자들이 일본의 만화와 소설 판권을 사들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바로 다양성 부족과 획일화된 문화로 인해 한국적 토양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감성적 비난의 대중성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역사가 질투와 시기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귀여니와 출판사를 보는 편협한 시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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