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2 16:46
수정 : 2006.01.1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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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파기의 즐거움
롤랜드 플리켓 지음. 박선령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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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독서
1455년 영국 랭카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는 뜻맞는 귀족들의 세를 규합해 서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벌였다. 30년간 지속된 이 전쟁-이라기보다는 내란에 가까운-은 랭카스터 왕가가 붉은 장미를, 요크 왕가가 흰 장미를 각각 문장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장미전쟁’이라 불렸다.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이름만은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낯익은’ 전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하나. 이들은 왜 전쟁을 벌였을까? “왕위계승권을 위해서”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지식과 교양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람일수록 더욱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장미전쟁의 실체는 “공공장소에서 코를 팔 수 있는 권리를 놓고 벌어졌던 내란”이며 “코 파기를 반대하는 쪽은 흰 장미 코덮개를, 찬성하는 쪽은 붉은 장미 코덮개를 쓰고 싸웠다”고, 관련 삽화까지 덧붙여 천연덕스럽게 주장하는 이 책을 말이다. ‘교양인을 위한 코 파기 박물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코 파기의 즐거움>이다.
영국의 대헌장 ‘마그나카르타’,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등 인류 인권신장의 역사는 코 파기 권리 쟁취사에 다름아니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코파리자’, 미켈란젤로의 ‘코딱지 창조’ 등의 예술작품도 인류 최고의 취미활동인 코 파기를 찬미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지한’ 농담을 끝갈데 없이 밀어붙인다. 코 파기 카운슬링·기술분석·어휘사전에까지 이르고 나면 어느새 피식거림은 사라지고 지은이와 같은 ‘진지 모드’로 동화돼버린다. 또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콧구멍을 향해 움찔거리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성 코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코 파기에 대한 연구에 정진하다 지금은 모교의 코 고고학과 명예교수이자 옥스퍼드 코파막파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 초빙된 상태에 있는 지은이 롤랜드 플리켓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뭘 망설이나? 가식과 체면일랑 벗어던지고 쑤시고 싶은대로 쑤시면 되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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