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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2 17:55 수정 : 2006.01.13 16:47

조선의 화가 조희룡
이성혜 지음. 한길아트 펴냄. 1만5000원

잠깐독서

19세기 문인화가 조희룡(1789~1866). 헌종 말년부터 철종 2년까지 홍문관 또는 규장각 서리로 문한의 일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56살에 여항의 인물 이야기인 <호산외기>를 짓고 58살에 반년 동안 금강산 실경을 그려 헌종한테 바쳤다. 59살에 시 동인그룹 ‘벽오사’를 만들고 63살에 ‘하찮은 일’에 연루돼 2년여 귀양살이를 했다. 75살에 <석우망년록>을 지어 삶을 정리하고 78살에 죽었다.

출세와는 무관한 인물이다. 추사와는 세살 차로 그의 문하에서 좌장 역할을 했고 추사로 인해 귀양을 갔을 만큼 긴밀한 관계였을 터이나 추사가 그를 언급한 것은 단 두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시, 서, 화를 접하면 일면 추사 아류처럼 보이고 일면 그를 뛰어넘은 듯해 아리송하다.

<조선의 화가 조희룡>(한길아트 펴냄)은 추사라는 장막을 걷어 문인화가 조희룡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한다.

조희룡은 매화병풍을 치고 매화차를 마시며 매화벼루에 매화먹을 쓸 만큼 매화를 좋아했다. 그만큼 매화를 잘 그렸는데 특히 홍매화가 그의 특장이었다. 그의 매화도는 파묵법으로 굵은 줄기를 잡은 뒤 무수히 핀 많은 매화꽃을 배치하는 게 특징. 전통 동양화의 선묘와 달리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은 것 같이 그렸다는 자평. 그는 난, 대, 괴석에서도 한가닥 했는데, 서권기(書券氣)와 문자향(文字香)으로 그림에 높은 정신세계를 그려야 한다는 추사의 논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기로 여기던 문인화를 전문적인 예술로 독립시켜 그 세계에 자신만의 미세계를 구축했다.

당연히 그의 시와 문은 그림에서 비롯되어 회화적인 이미지과 기법이 뛰어나다. 그의 시는 1930년대 이미지즘 시를 읽는 듯하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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