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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2 18:19 수정 : 2006.01.13 16:48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유승훈 지음. 살림 펴냄. 1만2000원

조선 국채 1300만원 때문에
전국엔 국채보상운동 이는데
친일파는 화투판에 미치고…
도박과 노름으로 읽는 한국사

화투짝 12월 ‘비’ 광 속의 수수께끼같은 그림. 한 영감님이 우산 같은 걸 들고 있고 옆에 두꺼비처럼 보이는 동물이 널브러져 있는 형상이다. 실은 우산 든 사람은 ‘오노노도후’라는 10세기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이고, 옆의 동물은 두꺼비가 아니라 개구리다. 버드나무에 뛰어오르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는 개구리를 보고 인생사에서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는 오노노도후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그러니까 검게 배경처럼 드리운 검은 파초잎 같은 것은 버드나무란 얘기다.

일본에서 화투는 ‘하나후다(화찰=꽃패)’ ‘하나아와세’ ‘하나 카루타’로 통한다. 16-17세기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을 통해 카드놀이의 일종인 카르타가 일본에 전해졌고 19세기에 일본인 취향과 풍토에 맞게 형식과 내용이 바뀌었으며, 여기에 우키요에 판화기술이 가미돼 정착했다. 그런데 하나후다에는 화투에 있는 ‘광’자가 없고, 비는 12월이 아니라 11월이며 ‘똥’으로 알려진 오동이 12월이고, 4월 흑싸리가 하나후다에서는 외형은 비슷하지만 등나무꽃이며, 5월은 난초가 아니라 창포다. 홍단·초단에 등장하는 중앙의 넓적한 띠는 일본 단가(와카)를 적는 긴 쪽지 형상이고, 비 쭉지(피)의 대문처럼 생긴 그림은 문이 아니라 귀신 형상이다. 그 정도만 다를뿐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러니 이 땅의 화투 역사는 일본의 조선 침략역사와 그대로 겹칠 수밖에 없다. 이 화투에 미쳐서 한꺼번에 수만원씩 어마어마한 거금을 날린 이들 가운데 이지용 같은 ‘을사오적’들이 포함돼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질 당시 조선 국채총액이 1300만원 정도였다는데 이지용은 그때 며칠만에 수만원씩을 잃었고, <대한매일신보>에는 오적의 수괴라 할 이완용이 판돈 수만원 규모의 화투판을 벌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1980년대 이래 줄곧 한국을 달구고 있는 ‘고스톱’ 버전. 고(go), 스톱(stop)부터가 그렇고, 따따블, 쓰리고에 고도리, 소당, 나가리 등 화려한 미제·일제 용어들에는 고단한 이 땅의 역사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거기에 광박, 피박, 설사, ‘전두환 고스톱’ 따위의 숱한 판쓸이 응용판까지 보태면 화투패 48짝이 연출해내는 조화만으로도 능히 한국 근현대사를 유추해낼 수 있을 지경이다.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살림 펴냄)는 이젠 화투 정도가 아니라 경마·경정·경륜 등 소위 3경에 카지노, 성인게임, 급기야 로또에까지 이르는 각종 복권 등 천문학적 규모의 사행산업을 사실상 국가가 앞장서서 적극 ‘권장’하기에 이른 도박의 긴 역사와 실태를 보여준다. 전에 <투전고-조선 후기 도박풍속의 일단면>을 통해 이 방면에 만만찮은 저력을 내보인 저자는 이번엔 훨씬 범위를 넓히고 종합적으로 접근한다. “나는 음지의 역사, 비주류의 문화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알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 …‘대중과 함께하는 인문학’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무관심하게 방치되었던 여러 주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밝혀낼 필요가 있다.” 지당하신 얘기다.

그리하여 고대 유적에서 발굴되는 목간 등을 통해 놀이와 의례, 도박과 주술이 인간역사 초창기부터 한 울타리에 놓여 있었고 투전이나 골패와 같은 도박용구가 점복·의례의 도구였다는 것, 생산력의 증가와 계급 분화를 거쳐 투기 차원의 도박이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본격화했다는 것 등을 살핀 뒤, 삼국시대의 박·저포·윷·주사위 놀이를 거쳐 고려 때의 격구, 조선시대의 쌍륙·투전·골패, 그리고 근현대의 화투·마작과 각종 사행산업을 두루 재미나게 섭렵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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