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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주 브레켄리지(Breckenridge)는 미국에서 두번째로 인기 있는 스키 리조트다. 여름에도 더위를 피해 많은 피서객들이 온다. 사진은 도시 한 복판을 흐르는 블루 리버에서 아이들이 물장난 치는 모습. 이 도시는 연방정부가 스페인, 멕시코 등과 영토협상을 할 때 깜빡 잊고 연방정부에 편입시키는 것을 잊어버려 1930년대에야 미국에 편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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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4)
후지어 패스를 넘고 나서 오랫동안 나를 물고 늘어지던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왜 로키 산맥은 나를 그토록 끌어당겼는가. 왜 나는 자전거로 미국을 건너고 있는가. 내 스스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듣는 질문이다. 할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달리고 있지? 질문을 받기가 부담스럽다. 그래도 피할 수가 없다. 미국을 횡단하려 한다는 시도에서부터 특이하게 작은 몰튼 자전거를 몰고 다닌다는 점 무엇보다 라이더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동양인의 외모 때문에 가는 곳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후지어 패스를 넘고 나서
나는 왜 이렇게 달리고 있지?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재미를 위해서!
그냥 페달을 밟는 중노동이 즐겁기 때문이다 아침 시골 카페에 들어서면 일제히 식사를 멈추고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죄송합니다. 문을 닫고 도로 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한다. 눈에 힘을 줘서 사열하는 장군의 눈빛으로 식당 안을 둘러본다. 눈을 마주치기 직전 시선들이 우르르 식탁으로 떨어진다. 식사 도중 안 보는 것처럼 하면서 지켜보는 기색을 느낀다. ‘저 시커멓게 생긴 동양녀석이 왜 우리 동네에 굴러들어왔어?’ 또는 ‘뭐 하는 놈인지 궁금해 죽겠는데 말을 걸 핑계가 없네’ 하는 표정들이다.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한국주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항상 먼저 다가온다. “어디서 왔어?” “미주리 주.” “아니, 원래 말이야.” “한국.” “한국 어디?” “서울.” “그래? 나, 67년부터 68년까지 동두천에 있었어.” “아, 그래? 한국에 온 게 너의 첫 해외여행이었지?” 그렇게 말문이 트이면 다른 사람들이 합세해서 호기심을 실컷 충족시킨다. “왜 횡단하냐” 숱한 호기심
그 때 받는 숱한 질문들 중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게 바로 왜 자전거로 횡단하느냐는 것이다. 효율성과 생산성 그리고 속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시간 낭비거나 미친 짓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답하기가 까다로운 게 아니다. 나도 왜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전거 혁명을 일으키자. 취지는 좋은데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는 중노동이다. 그런데 그 말 속에 답이 있었다. 그냥 좋기 때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로키 산맥을 넘기 위해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후지어 패스에 오르는 순간 절정의 감격 같은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강렬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그냥 마음이 편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페달을 밟는 게 즐거워졌다.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 됐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는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또는 아프리카 문맹 퇴치기금 모금을 위해 횡단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자기가 좋아서, 페달을 밟는 데 몰입하는 게 좋아서 하는 것일 테다. 그렇지 않으면 주야장천 자전거를 탈 수 없다.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을 혹시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맘을 정하기 앞서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보시길 권한다. 토요일 아침 한강에 나가 암사동에서 행주대교까지 36㎞를 한 번 왕복한다. 아마 대여섯 시간 걸릴 것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잠을 푹 자고 일요일 아침 일어나면 몸이 뻑적지근할 것이다. 교회 가자는 아내와 같이 축구하자는 아들의 청을 뿌리치고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이번에는 짐수레를 끌거나 짐수레가 없으면 배낭을 매고 자전거를 탄다. 배낭에는 이희승의 국어대사전과 같은 두꺼운 책을 네댓 권 집어넣는다. 이번에는 한강 고수부지에서 100㎞만 달려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고 느낄 것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 지하철을 타면 잠깐 눈을 붙인다고 생각했는데 오이도나 동막과 같은 낯선 곳에서 깨어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회사 갈 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한강은 지겨우니 이제 서울에서 대전까지 달려본다. 이번에는 배낭에 전날의 사전류에다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 넣는다. 대전에 도착해 여관에서 자고 대충 끼니를 때운 뒤 화요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만약 그 날 집에 도착할 수 있다면 집에서 자고 수요일 아침 이번에는 춘천을 향해 출발한다. 배낭에 사전류를 들어내고 텐트와 슬리핑백, 코펠 등을 집어 넣어 실전상황을 방불케 하는 여행을 한다. 춘천 역 앞 광장에 도착해 한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잔다. 불안해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고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 역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금요일 하루는 집에서 푹 쉰다. 그리고 토요일 다시 한강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갈 때 이렇게 십수 번을 되풀이해야 미국을 횡단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냥 한강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물으니 말문이 막혔었다. 나는 이제 “재미를 위해서 (For fun)”라고 간결히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좋다. 그게 놀이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시켜서 하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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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어 패스로 가는 길에 만났던 단출한 차림의 라이더. 그는 미국을 횡단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의 뒤로 설봉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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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 ‘호모 파베르’를
로키산맥이 불렀다
세계 한판 놀아보자고
노동이 세상과의 충돌이라면
페달밟기는 화해다
그래도 나는 실존주의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늘이 최상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점점 더 좋은 날로 가는 도중의 하루라는 뜻이다. 오늘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그것은 왠지 과거를 지우고 싶어하는 사람의 미래에 대한 부질없는 희망처럼 들린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들은 보다 나은 날들을 위해 바닥에 깔리고 종합되는 것이다. 나는 바퀴를 굴리면서 내 몸의 가능성이 쉬지 않고 이뤄지고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후지어 패스를 넘었어도 여전히 성취해야 할 험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더 이상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교문을 열고 뛰어들어가는 운동장이 된다. 나와 세상의 관계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면서 역동적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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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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