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9 16:55
수정 : 2006.01.20 15:37
역사로 보는 한주
1788년 1월26일 영국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집단이주가 시작됐다. 초기 이민단 1030명 가운데 죄수가 736명이었으며, 나머지 대다수는 빈민들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 직할식민지가 된 그 날을 건국기념일로 삼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은 1901년 1월1일이다.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땅에 눈독을 들인 것은 자국 범죄자 수용을 위한 식민지(유형지)였던 미국이 독립(1776년)함에 따라 그 대체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백인들의 토착 원주민 말살이 시작됐고, 지금까지 그 야만적인 과거를 둘러싼 ‘역사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달리 일컫는 ‘호주’라는 말은 원래 한자말 번역어 ‘호태랄리’ 가운데 첫말 ‘호’에 땅을 뜻하는 주를 붙여 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말은 라틴어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남쪽 땅)에서 왔다. 가끔 이와 헷갈려 쓰이는 유럽의 오스트리아(오지리)의 국명은 공용어인 독일어 ‘에스터라이히’에서 온 말인데, 그것은 ‘(독일의) 동쪽 나라’라는 의미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대는 고대부터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남쪽에 있는 미지의 땅)으로 불리었고, 4만2000-4만8000년 전에 수렵채취민이었던 지금의 토착원주민들(아보리진) 조상이 이주해 정착했다.
이 땅에 유럽 백인이 당도했다는 가장 확실한 기록은 1606년 네덜란드인이 남겼고,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 내내 북서부 해안지역을 뉴홀랜드로 불렀으나 식민화하지는 않았다. 1770년 제임스 쿠크라는 영국인이 동부해안지역에 당도해 뉴사우스웨일스라는 이름을 붙여 영국땅이라고 선언했다. 1788년 영국민 이주가 본격화한 지 40여년 만인 1828년께에 호주 전역이 영국 식민지가 됐다. 백인들의 ‘탐험’과 ‘개척’은 곧 원주민들의 토지 약탈, 축출, 살해를 의미했다. 1830년께 이미 순혈 타즈메이니아 원주민은 절멸당했다. 유럽인 정착 150년만에 호주 원주민 35만명은 유럽인들이 갖고 온 질병과 강제이주, 인종말살, 식민정책 등으로 거의 씨가 말랐다. 아보리진 보호법은 1967년에 와서야 제정됐으며, 아보리진 인종말살에 대해 그것이 과장·날조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둘러싼 역사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호주는 대륙 가운데서는 가장 작지만, 대륙 전체가 하나의 국가로, 국가별 면적순으로는 세계 6위다. 약 2천만 인구의 92%가 백인이며 아시아인은 7%, 기타 아보리진 등은 1% 정도다. 19세기에 양모산업이 일어나고 1850년대에 골드러시(황금찾기 열풍)가 일면서 금광을 찾아온 중국계 이민이 늘자 아시아인 배척운동이 벌어졌고 나중엔 ‘백호주의’(백인들만의 호주)가 국시가 됐다. 백호주의는 2차대전 뒤 백인 이주가 줄면서 인구증가가 둔화된 1960년대에야 이민 문을 넓히는 다문화주의로 전환됐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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