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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9 17:42 수정 : 2006.01.20 15:36

고뇌하는 중국
왕후이·친후이·왕안이 외 지음. 장영석·안치영 옮김. 길 펴냄. 2만8000원

천안문 사태 이후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화려한 경제발전 이면에 가리어진
사상의 흐름과 농촌위기·여성·교육 등의 문제
그리고 금기시된 천안문 사태까지 파헤친다

저 땅덩어리 넓고 인구 많은 중국에 자신이 몸담고 사는 중국을 아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의 답은 두 명 반이다. 누굴까. 한 명은 장제스, 다른 한 명은 루쉰, 나머지 반 명은 마오쩌둥이라는 것이다. 펑쉐펑(馮雪峰)이란 사람이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오에게 전했다. 마오는 크게 웃고 나서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일본인 정말 간단한 친구가 아닌걸. 루쉰이 중국을 알고 있다는 말은 맞는 이야기야.” 진시황 플러스 마르크스임을 자임했던 마오쩌둥이 아직 정권을 잡지 못했던 1934년에 있었던 일화이다. 그렇다면 찬란한 별이 길을 훤히 밝혀주던 ‘행복한’ 시대를 지나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도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는 작금의 중국을 아는 사람은? 세계화와 맞물려 워낙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앞서의 일화에서처럼 심플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미국의 UCLA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중국현대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 책의 편집자인 왕차오화 여사가 답을 얻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이렇다. 먼저 이 시기를 중국 개혁의 ‘첫번째 십년(1978-1988)’과 ‘두번째 십년’(1992-2002)으로 나눈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대략 80년대와 90년대라고 말해도 좋다. 두 시기를 나누는 분기점에 천안문 사태가 있다. 그 다음으로 두 시기를 대비시켜 두번째 시기를 부각시킨다. 그에 따르면 첫번째 십년이 5·4시기에 비유될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표출된 희망의 시기였다면, 두번째 십년은 꿈에서 깨어난 역사적 시기라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중대한 정치적 사건의 압력 아래 어쩔 수 없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평범한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직접 대면하면서 사고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한 시기는 바로 이 두번째 시기이다. 그리고 나서 이 두번째 시기를 장식한 지식인을 선정한다. 사고의 독립성과 정치적 입장의 대표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왕후이·간양·첸리췬·리창핑과 같은 이른바 ‘신좌파’에서부터, 주쉐친·친후이·샤오쉐후이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망라한다. 그 사이에는 천핑위안·왕안이·후안강과 같이 딱히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지만 모두 12명이다.

천안문사태는 90년대 이해의 열쇳말

<고뇌하는 중국>의 편집자인 왕치오화(UCLA 중국현대문학 박사과정)는 중국 개혁을 천안문 사태를 기준으로 첫번째 시기(1978~1988)와 두번째 시기(1992~2002)로 나눈다. 그는 두 시기 개혁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핵심이자 1990년대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는 출발점을 천안문 사태로 보고 있다. 사진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의 시위대가 거리 행진을 하는 모습.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서 선정한 지식인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배치한다. 1부에서 왕후이·주세친·천핑위안·친후이 등 4명의 중국의 저명한 지식인의 인터뷰를 통해 화려한 경제발전이라는 구름 속에 가리워진 90년대 중국사상계의 면모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왕이·리창핑·후안강의 글을 수록하여 90년대 이래의 경제개혁이 야기한 노동자 계급의 지위 하락, 농촌의 위기, 중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등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비판적인 부분으로 중국사회가 매우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3부에서는 과거 10년 동안 사회 변화가 양산한 가장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교육문제, 여성문제, 개인과 국가의 문제, 성공 이데올로기의 문제, 역사 망각의 문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대륙의 지식인 아닌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편집자 자신과 왕단?리민치의 원탁토론을 싣고 있다. 이들은 모두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 지도자들이었다. 편집자가 마지막에 이 토론을 배치한 이유는 천안문사태는 두 개의 개혁 10년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핵심이자 1990년대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는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국 대륙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토론하고 분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사상사 정리와 반성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왕차오화 여사가 중국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터뷰와 문장 선택이라는 방식을 통해 최근 10년간(영어원서가 출간된 2003년 기준)의 중국의 사상사를 정리하고 반성한 역작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먼저 마지막 부분의 토론에서 드러나는 왕차오화 여사의 문제의식을 확인한 이후에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고대중국이 아니라(고대로 돌아가고자 앙모하는 자는 고대로 돌아가게 하라!) 오늘날의 중국 사상계의 동향을 알고 싶거나 중국의 미래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소 길지만 루쉰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갈림길에 처한 중국에서 여기 소개한 지식인들의 선택은 다르지만 모두 진지하게 사태에 직면해서 분투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어찌 보면 모두 루쉰의 후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쉽게 부딪히게 되는 난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갈림길입니다. 갈림길 앞에서 묵적선생은 ‘슬피 울며 돌아섰다’고 전해지지만 나라면 결코 울며 되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우선 갈림길 입구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잠 자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내가 갈 길을 정하여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자비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그가 가진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지언정 결코 그에게 길을 묻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앞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랑이를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호랑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호랑이가 꼼짝 않고 서서 가지 않는다면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을 겁ㅈ니다. 나무에 허리띠로 몸을 묶어두고서 설령 그대로 죽는다 해도 호랑이가 내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만약 나무가 없다면? 그렇다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호랑이의 입속으로 통째로 삼켜진다 한들 어쩌겠어요.

두 번째 난관은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완적은 ‘통곡하며 돌아섰다’고 전해지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막다른 길 또한 갈림길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헤쳐 나가야지요. 온통 가시덤불로 뒤덮여 도저히 갈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길은 아직 본적이 없으니까요. 나는 이 세상에 본디 막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게다라 운 좋게도 이제껏 그런 난관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것 같군요.“

황희경/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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