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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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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작가 보르헤스는 천국을 상상해보다가
“천국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 말했다
낙원까진 아니더라도 빈부 골이 깊은 나라에서
도서관이야말로 이 시대 ‘사회 안전망’이다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서울시가 본격적인 도서관 건립에 나선다고 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금년에 시작해서 2008년까지 소규모 공공도서관 129개관을 건립(리모델링 포함)하고 서울을 대표할 대형 도서관도 하나 짓는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종합적인 도서관 설립 계획을 내놓기는 경기도에 이어 이번 서울이 두 번째지만, 광역 대표 도서관을 계획에 포함시킨 것은 서울이 처음이다. 인구 1천만의 서울에는 주민의 생활권에 밀착한 ‘동네도서관’이 최소 2백 20개는 있어야 하고 본격적인 연구조사활동이 가능한 ‘규모의 도서관’도 4개 쯤 필요하다. 현재 서울 일원에는 사설 도서관까지 합쳐 공공도서관이 74개소 있고, 대형의 집중도서관은 한 곳도 없다. 도서관만 놓고 말하면 서울은 ‘문화도시’가 아니다. 전화번호부만 있고 책은 한 권도 없는 졸부의 집구석, 부동산 거래소, 놀부네 토건회사 같은 데가 서울이다. 그런데도 도서관 짓는 일은 한없이 뒷전으로 밀쳐놓는 것 같았던 서울시가 드디어, 늦게나마, 도서관 건립에 나서기로 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의 사회적 필요성은 줄지 않고 그 기능은 퇴화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 세계 주요 국가들의 도서관 건립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고, 나라별 편차가 있긴 하지만 도서관 이용자도 증가하고 있다. 한 예로, 2004 회계연도 뉴욕시 공공도서관 이용자는 연인원으로 따져 뉴욕 인구의 두 배인 1천 5백 40만 명, 전년 대비 6%가 늘어난 규모다. 뉴욕시 이민 밀집지역인 브롱크스 자치구의 경우에도 지난 해 지역도서관 이용자는 주민 1백 50만의 두 배인 3백만 명이고 그중 70만 명이 도서관 대출증 소지자다. 이런 사례들은 도서관이란 데가 조만간 종이책 박물관, 구시대 유물, 활자매체의 무덤으로 내려앉을 것이라던 ‘디지털 점쟁이’들의 예상을 뒤엎는다.
우리는 도서관과는 참 인연 없이 살아온 백성이다. 도서관과 시민의 삶이 너무도 멀리, 사돈의 100촌 거리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덕 보며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인은 1천명에 한 명이 채 안 될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 다니며 자랐노라 말할 사람은 만 명에 하나를 만나기 어렵다. 그러나 요 몇 해 사이 이런 사정에는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어린이도서관을 지으라는 주민 요구가 빗발치고, 학교도서관 확충 운동이 전개되는가 하면 공공도서관을 더 많이 짓고 콘텐츠를 채우라는 주민들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점쟁이들의 허황된 생각과는 반대로,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점증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이 여전히 사회의 필수 기본시설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돈 없이도 책은 얼마든지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도서관은 정보격차를 줄이는 위대한 민주기구다. 아이디어를 만나고 기회를 창출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서관은 수동적 문화향수를 넘어 가치가 창조되는 생산기지, 평생학습의 장, 시민의 대학, 주민의 서재다.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고 기억과 상상력이 용접되는 곳, 지적 모험의 땅, 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여행지, 국경과 인종과 계급이 영원히 퇴각한 코스모폴리탄의 세계, 거기가 도서관이다. 실용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지식의 사냥터이고 혼의 춤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영혼의 즐거운 무도회장이다. 도서관은 만남의 장소다. 남녀가 만나고 만나서 사랑도 하고, 내가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는 곳, 타인을 만나면서 어랍쇼, 어찌된 거냐, 너에게 내가 있구나의 기묘한 연금술이 일어나는 곳, 거기가 도서관이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이 천국 같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다. 20세기 남미 대표작가의 하나, 호르헤 루이 보르헤스가 그다. 그는 ‘천국’을 상상해보다가 “천국은 필시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 말한 사람이다.
그러나, 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처럼 빈부의 골이 깊어지는 나라의 정치인, 정책 수립자, 관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도서관이야말로 이 시대 ‘사회안전망’의 하나이고 공생의 시설이라는 점이다. 아이들 책 사줄 돈이 없어 가슴에 멍드는 젊은 엄마들에게 어린이도서관은 자녀 양육의 책임과 경비를 분담해주는 사회기구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놀이터, 공부방, 탁아소가 어린이도서관이다. 동네도서관은 갈 곳 없는 노인들, 몸 불편한 사람들, 마음 외로운 사람들이 냉대 받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사회시설이다. 동네도서관은 직업훈련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무상교육의 장이고 동네 사람 누구나 초대 받는 문화체험의 무대, 누구든 여가의 창조적 활용으로 행복을 키울 수 있는 공적이면서 사적인 공간이다. 잘만 운영하면 동네도서관은 취업을 비롯한 유용한 삶의 정보와 공동체의 경험들이 교환되는 정겨운 나눔의 방, 사회봉사의 현장, 기초 기술의 연마장이다.
동네도서관은 무엇보다도 시민의 사회적 능력 중에 기본이 되는 잘 읽고 잘 쓰고 정보를 다루는 능력, 이른바 ‘리터러시’(literacy)의 요람이다. 이 리터러시가 부단히 강화되는 곳에서만 판단력을 가진 민주시민, 책임 있는 사회인, 유능한 경제인간이 나온다. 우수한 연구자, 예술가, 전문직업인도 그 능력 위에서 배양된다.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선의, 배려, 이해의 능력도 근본적으로 리터러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책 읽는 가족’의 문화도 리터러시라는 기본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도서관을 짓고 대민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더도 덜도 말고 정확히 사회발전과 안전의 기본을 세우고 기초를 닦는 일이다. ‘기본이 선 나라’의 그 ‘기본’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기본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만사가 공중누각이다. 도서관 정책이 중요한 사회정책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사회의 기본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동네도서관 얘기를 주로 하다 보니 서울에 있어야 할 또 다른 기본 시설로서의 대형 도서관 얘기를 할 틈이 생기지 않는다. 건물 건립 이후에, 건물 이상으로 중요해지는 도서관 운영방식과 체제, 전문 인력과 프로그램의 문제도 언급할 겨를이 없다. 도서관 짓는 일이 정치적 상상력의 문제라면 운영과 프로그램은 문화적 상상력에 관계된 문제다. 그런데 오늘만 날인가, 남겼다 나중에 얘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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