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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세균원인설을 굳건히 세우고 미래의 생물학적 예방법의 기초를 다져놓은 등의 업적으로 살아있을 때부터 ‘최고과학자’로 불린 파스퇴르의 초상화. 그는 뛰어난 연구자이면서 자신의 업적을 세상에 과시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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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발효 연구하다 세균설 위업
탄저병 예방법 공개시연으로 명성
대중·언론·권력자 능란하게 활용해
‘허풍쟁이·정치꾼’ 비난도 있었지만
반과학적 행위 벌이지 않고 역사 ‘우뚝’
의학속 사상/(14) 세균학 개척한 루이 파스퇴르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 온 전염병의 퇴치와 관련해 우리는 제너, 젬멜바이스, 리스터 등 수많은 의사와 의학자의 이름을 꼽을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근대적 산업국가에서는 전염병이 보건의료상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게 됐으므로 그들의 업적이 별로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불과 한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전염병이 이환과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들 의사와 의학자들의 업적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물론 전염병이 퇴치되고 극복된 데에는 영양과 주거·작업환경 등의 개선이라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좁은 의미의 의학보다 더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역사 속의 명의들’과 ‘무명의 의료인들’의 노력과 성과를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한 현대에 들어 의학과 의사의 권위가 높아지게 된 데에는 세균학의 기여가 커다란 구실을 한 측면도 지나칠 수 없다.
그러한 의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역사에서 우뚝 선 사람이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년)이다. 파스퇴르의 기념비적인 업적들 가운데 몇 가지만 든다면, 자연발생론을 완전히 굴복시켰고, 전염병의 세균원인설을 굳건히 세웠으며, 젬멜바이스와 리스터가 사용한 무균 및 살균법의 효력을 증명했고, 미래의 생물학적 예방법의 기초를 다져 놓았다.
화학 교육을 받은 파스퇴르(좁은 의미로는 의사가 아니었다)는 오히려 생물학적 현상에 더 관심을 가져 인접 과학 사이의 상호 교류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모범이 됐다. 파스퇴르는 1854년 릴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찰의 세계에서는 준비된 마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자신이 이 금언의 좋은 본보기가 됐다.
파스퇴르의 초기 연구는 입체화학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는 각각의 결정상에서 세균이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관찰하고는 이 사실을 지역 양조업자로부터 문의받은 포도주 발효에 대한 연구에 적용시켰다. 그 결과는 양조 과정의 난점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세균설로 개화하게 됐다. 그는 곧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생물이 발효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포도주를 몇초 동안 60도 정도로 가열함으로써 포도주를 산화시키는 세균을 죽이는 방법(저온살균법)도 개발했다.
전세계 누에산업 구해내 또 누에의 전염병이 섬유산업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파스퇴르는 거기에 두 가지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립자병은 누에 알이 감염됨으로써 생기며, 연화병은 누에 창자 속에 세균이 번식함으로써 생긴다는 것이었다. 감염된 알을 솎아내고 누에의 먹이를 바꿈으로써 프랑스뿐 아니라 전세계의 누에 산업이 구원을 받게 됐다. 파스퇴르는 그 뒤 갑자기 뇌일혈로 고생하게 됐고 회복했을 때에도 발음이 느리고 불분명한 등 후유증이 심했다. 그는 이미 쌓아 올린 업적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들게 될 정도였으므로, 또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그의 가장 유명하고 가치 있는 공헌이 막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파스퇴르의 다음 연구는 탄저병이라고 불리는, 양의 치명적인 질병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탄저병균을 분리함으로써 코흐(Robert Koch, 1843~1910년)의 선구자가 됐으나 아직 그것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방법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많은 양계업자의 애를 태우던 닭콜레라를 연구하도록 위촉받았을 때만 해도 그의 연구가 탄저병의 예방, 나아가 예방의학에 혁명을 일으키는 방법을 만들어내리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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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파스퇴르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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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익/서울대 교수·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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