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26 19:03
수정 : 2006.02.06 15:30
말글찻집
세상이 급히 돌아 10년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워졌다. 나라·기업 두루 졸속이 판을 치고,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신문들조차 무슨 ‘운수’ 기사를 꾸며 나날이 싣는다. 사주팔자로 세밑이나 정월에 한번쯤 재미로나 볼 것을, 격이 떨어져도 한참이다.
‘점보다·점치다·점하다’는 오래 된 말인데, 최근 들어 ‘점쳐진다’란 말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신문·방송에서는, ‘점치는’ 글, 곧 정부의 개각, 선거 출마, 새해 들머리, 갖가지 전망하는 기사들에서 흔히 보인다.
△또 베이징 인민대회당 주변도 평상시와 달리 이날 새벽부터 일반인의 관람을 불허하고 경계를 대폭 강화해, (김정일과)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과의 회동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파문이 증폭되고 최종 조사결과 이후 여론 추이에 따라 국정조사를 수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속성장이 관측되면서 ‘쾌청’이 점쳐진다. △일부 공공기관의 분산배치는 ‘추후 논의’로 결정낼 것으로 보여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점쳐진다. △최근 3년간 역대 전적에서도 2승2무로 앞서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우세가 점쳐진다. △단지 옆에 롯데 낙천대 1164가구가 들어서 대규모 단지 입주에 따른 반사이익도 점쳐진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씨티그룹과 농협이 복병으로 점쳐진다. △○○○ ××구청장이 도전의사를 밝혔고 ○○○ ××구청장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올해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표방하는 배달·테이크아웃 품목이 다양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이 경우 10명 안 팎의 대폭 개각이 점쳐진다.
대체로 “보인다·손꼽힌다·전망된다·예상된다·알려졌다·내다보인다·예견된다·들먹인다·거명된다 …”들로 바꿔 쓸 수 있다. 또 ‘가능성이 있다’와 ‘점쳐진다’는 같은 말이어서 한쪽은 쓸 필요가 없기도 하다.
관청·기업체 주변에서 소식·관측·정보통이라면 이차적이긴 하나 ‘기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기자란 전달자여서 스스로 예상·전망·예측하거나 점을 치다가는 공정성을 잃기 쉬운 까닭에 삼간다. 그러나 자신이 있다면 이름을 걸고 직접 전망·분석하는 기사를 써도 좋을 터이다. 그렇게 하면 기사의 문틀과 말 씀씀이가 많이 달라질 터이다.
‘카더라’보다 더 무책임하고 솔직하지 못한 씀씀이를 가진 이 말은, 점치는 주체를 감추는 구실에 더하여 기사 품위를 떨어뜨리는 데도 한몫을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