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26 19:04
수정 : 2006.02.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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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도/경상대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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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었다/지리교육연구회 지평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에드워드 사이드(E.Said)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 중심의 자문화 본위로 현상을 이해하려 할 경우 상대방 문화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서구인의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보는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21세기 한국이 당면한 세계화, 국제화의 파고를 잘 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서구인들이 요구하는 관점에따라 이 세계를 이해하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 그러한 점에서 교육 현장의 지리교사들이 펴낸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푸른길 펴냄)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잉카문명을 이야기하지만 잉카라는 말이 단순히 ‘왕’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잉카제국’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왕의 나라’라는 뜻이다. 나라의 이름이 없다. 이 지역에 번성하였던 나라 ‘타완틴수요’는 ‘4방으로 뻗어 있는 나라’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타완틴수요’라는 이름은 없고, ‘잉카’라는 말만 남아 있는 것은 마치 고려 말 몽골에 의하여 고려의 임금을 ‘왕’이라고 낮추어 불렀던 것에 대비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지역을 문화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남부유럽 민족인 라틴족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 2차적 유럽문화라는 의미를 강하게 갖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중남미’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현장의 지리교사들은 주장한다.
지명이 본질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그 지역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에는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타완틴수요 사람들이 살았던 남미라는 지명과 왕이 살았던 라틴아메리카라는 지명이 갖는 차이점이 너무도 뚜렷하게 비교되지 않는가? 만약에 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지금도 우리나라를 왕이 살았던 중국의 속국이라고 표현을 한다면 그 미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듯이, 최근 우리나라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남미지역에 진출한 한국인이 그 지역을 왕이 살았던 남부유럽의 속국이라고 표현한다면 우호적인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지역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세계가 보인다. 올바른 지역이해는 올바른 지리교육에서 시작된다. 일제에 의해 국토가 유린되기 시작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가장 처음 없어진 교과목이 한국(국토)지리 과목이다. 지역과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지리과목을 일제는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리라.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았어야 할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미군정에 의하여 그 기회를 잃게 된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교육은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였기에 공민(시민)교육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의 교육담당 장교는 그러한 토양하에서 단일민족, 단일문화인 우리나라의 사회과를 공민교과로 만들어 역사와 지리를 사회과 속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학교현장의 지리 교사들은 물론 지리학계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학교 현장 교사들 사이에 그러한 노력이 책으로 처음 결실을 맺은 것이, <교실밖 지리여행>이고 가장 최근에 나타난 노력의 결실이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이다.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기 위한 현장교사들의 1년여에 걸친 답사준비와 24일의 현장답사, 10개월에 걸친 원고 작업등 책의 곳곳에 이들의 노력이 배어나온다. 이 책은 올바른 지역이해를 전제로 한 관광지리 과목의 신설을 주장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세계를 올바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학생들은 물론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에게도 지역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는데 매우 값진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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