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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6 19:26 수정 : 2006.02.06 15:31

루비 레드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영희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9500원

남편과 딸이 관계할까봐
두려움에 딸을 내보낸 어미
사랑과 질투, 욕망과 중독 등
어른을 위한 심리동화

서른여덟에 그다지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졌다. 사흘 진통 끝에 낳았다. 그후 남편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남편의 가슴에 파묻힌 게 내가 아니라 아이라니…. 모순된 감정 사이에서도 우리는 행복했다. 하지만 남편이 끼어들면 팽팽한 삼각관계로 변하고 나는 주변인이 되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버지는 마술사였고 나는 관리인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 생리가 시작되었을 때 부부는 권태기에 접어들었다. 아이한테 나는 책을 사주었지만 남편은 사탕, 드레스를 사주었다. 어느 날 남편이 침대를 사주자 좋아하는 아이는 남편과 함께 드러눕기도 했다. 나의 젖가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메말라가는데… 혹시 남편과 아이가? 나는 사냥꾼을 시켜 아이를 죽이라고 했다.

로렌 슬레이터가 쓴 심리동화집 <루비 레드>(에코의서재 펴냄)의 표제작 ‘루비 레드’의 이야기다. 백설공주는 무슨? 자기 몸뚱이에서 잘라낸 붉은고기 같았으니 루비 레드다! 지은이는 안데르센이 아닌 그림동화집의 백설공주에서 착안하는데, 요체는 공주의 엄마가 의붓어미가 아니라 친어머니라는 것. 불편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엄마의 고백은 계속된다. 사냥꾼은 아이를 죽이지 않고 난쟁이들한테 데려갔다. 두려웠다. 딸아이가 임신할까 봐. 특히 남편의 아이를…. 무엇보다 나의 증오가 두려웠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아이가 쓰러졌다. 미안하고 기뻤다. 왕자의 키스로 깨어난 딸은 한 남자와 결혼하는, ‘나와 똑같은 실수’를 했다. 네 아들을 낳았다. 왕자가 바람을 폈다, 딸이 신경쇠약에 걸렸다는 소문이 들렸다. 또 임신한 딸은 “이젠 아이를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나는 낙태약 대신 “나도 너를 원치 않았단다”라고 말해준다. 지금은 원수같던 딸과 나는 친구가 되어 손녀를 돌봐주고 있다.

지은이는 ‘루비 레드’ 등 15편의 동화를 통해 가족의 병리현상, 선과 악의 문제, 성 역할의 갈등, 사랑의 양면성 등 일상에서 겪는 삶의 딜레마를 상징과 은유로 다룬다. 그동안 애써 감춰온 삶의 생채기를 드러내고 이야기함으로써 내면에서 곪은 상처를 끄집어 내고 무의식에 머물던 것을 의식차원을 끌어올려 직접 대면토록 한다.

“동화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두려움과 맞서고, 욕망과 싸우고, 도덕적인 문제와 대면할 기회가 필요하다.…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대립구도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를 끌어올리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고, 자신의 문제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이다.”(서문)

이야기들은 ‘루비 레드’처럼 어디서 본 듯한데서 취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낯선 느낌을 갖게 하고 때로 섬뜩함으로 이어진다. ‘황금알 낳는 거위’ 비슷한 ‘황금알’은 주인공이 기대감을 갖고 알을 깨지만 다시 알이 나오고 그것은 계속 되풀이된다. 포기했을 때는 깨진 껍질들과 거울 속에 비친 늙은 자기 모습뿐이라는 얘기로 바뀌어 있다. ‘인어아가씨’를 닮은 ‘물개아가씨’는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하고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제목의 이야기는 뒤바뀐 부부관계를 이야기한다.

남편은 아내의 감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을 채운다. 어느 날 아내는 나무틀 조각으로 창문을 만들어 그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혼자서 아침을 먹고 흡족한 표정으로 아내를 부른다. 대답이 없자 무심코 처음 보는 창문을 분해해 버린다. 두 쪽 분량의 ‘창밖으로 나간 아내’는 중년부부의 위기를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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