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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술 이전의 하지 절단수술을 그린 토마스 롤란드슨의 그림(17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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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이 파티에서 즐기던 ‘웃음가스’
최초로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한 롱
정작 명성은 4년 뒤 마취 수술 시연한
모튼과 잭슨에게 돌아갔고
둘은 이권 다투다 고통 속에 생애 마쳐
의학속 사상/(15) 고통과 마취의 역사
1920년대 미국에는 희한한 쇼를 벌이는 사나이가 있었다고 한다. 깁슨이란 이름의 이 사나이는 수영복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해 관객을 향해 걸어간다. 통로의 관객들에게는 살균된 핀이 배포됐는데 그가 걸어가는 동안 몸속에 그 핀들을 찔러 넣는다. 50여개의 핀에 찔린 이 사나이는 천연덕스럽게 이 핀들을 하나씩 뽑아낸다. 이런 쇼는 하루에 두 번 19개월 동안이나 계속됐다고 한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한 여인이 놀라 실신하면서 쇼가 중단됐다고 한다.
이 사나이는 일곱 살 때 도끼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 이후 어떤 신체적 고통도 느낄 수 없게 되었는데 이후 자신도 모르게 또는 인위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 수명을 단축했다고 한다. 이 사나이가 느꼈을 ‘고통을 모르는 고통’이 어떠했으리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심각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의 고뇌를 헤아리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고통은 물리적 자극에 따른 신경계의 반응일 뿐 아니라, 객관화하기 어렵고 은밀한 실존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병을 앓는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어 ‘환자’(患者)에 있는 ‘환’(患)은 벌레 두 마리를 통해 ‘마음’(心)에 꼬챙이가 찔려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질병의 고통은 외부적 요인(벌레)과 내부적 요인(마음)이 합쳐져 생기는 것이란 암시로 보인다. 여기서 병을 앓는 사람은 ‘근심하는 사람’이 된다. 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patient’는 견디어낸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질병의 고통은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외부적 충격일 뿐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의 주체적 반응을 포함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신화와 종교의 영역에서 고통은 성스러움이나 내적 위대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한 예수나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산 채로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혀야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바라보는 세속적 인간은, 이 위대한 영적 존재들과 더불어 아파하기보다는 차라리 비극적 정화(tragic catharsis)를 통해 영적 치유를 얻는다. 이처럼 고통에는 신체적 반응뿐 아니라 실존적ㆍ영적 차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질병을 몸속의 특정 장기와 조직, 그리고 세포의 수준에서 탐색하기 시작한 근대의학은 고통 속에 담겨 있던 이러한 의미들을 하나씩 거둬내며 세속화시키기 시작한다. 신체적 고통을 줄이거나 아예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은 극심한 통증 없이도 광범위한 절제수술 등을 할 수 있게 됐고 근대 외과학은 비약적 발전의 계기를 맞는다.
고통에 담긴 영적 의미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마취의 발견과 적용 과정에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수많은 사건이 얽혀 있다. 이 과정은 조용한 발견과 시끄러운 적용으로 요약된다. 최초의 전신마취제는 아산화질소 가스다. 1772년 영국의 화학자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이 가스는 지금도 통제가 어려운 어린이 환자를 치료하는 소아치과에서 흔히 사용된다. 이 가스를 흡입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통증에 대한 감각도 무디어져 ‘웃음가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가스가 처음 사용된 것은 의료용이 아니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배를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 귀족들은 사람들을 파티에 초대해 이 가스를 흡입하는 여흥을 제공했다. 당시 사람들은 최초의 마취제를 마약이나 알코올과 같이 기분을 좋게 할 용도로 사용했던 셈이다. 이후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이 발견돼 마취제의 목록이 늘어났고 역시 여흥거리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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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세계 최초로 시연된 전신마취 외과수술 장면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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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익/인제대 교수·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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