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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2 18:52 수정 : 2006.02.06 15:43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진단명: 사이코패스
로버트 헤어 지음. 조은경·황정하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평소 집에선 다정한 남편이자 평범한 아버지였던 택시운전사가 알고 보니 몇년 동안 10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던 흉악범이라는 기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1년 전, 이미 우리는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부유층에 대한 불만으로 무려 21명의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로 인해 이미 비슷한 홍역을 치른 바 있지 않은가.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슷한 사건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이들처럼 충동적이고 무책임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그래서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면서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신의학에선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가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무려 40퍼센트. 미국 연쇄살인범의 90퍼센트, 폭력사범의 50퍼센트가 사이코패스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한다.

물론 사이코패스가 모두 연쇄살인범이나 성폭행범처럼 흉악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의 발병율은 전체 인구의 약 1퍼센트. 우리가 언젠가 한번쯤 만났을 법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을 고통의 지옥을 빠뜨리는 이 몬스터의 발병 원인은 무엇이며 치료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답을 찾아보기 위해 책꽂이에서 최근에 출간된 <진단명: 사이코패스>(바다출판사, 2005)를 꺼내 읽었다. 멀쩡한 겉모습에 감춰진 추악한 괴물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이코패시(Psychopathy)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힌다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 로버트 헤어 교수가 쓴 이 책에는 속시원한 답이 들어 있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사이코패스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이 엉터리 책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만큼 사이코패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왜 사이코패스가 탄생하는지 우리는 아직 그 원인을 모른다. 전두엽에 이상이 있다는 가설도 있고, 발달지체로 인해 어린이 같은 뇌를 가지게 됐을 것이라는 가설도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환경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가정환경이나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이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치료방법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심리치료나 상담치료, 정신분석, 사이코드라마, 전기충격요법 등 기존의 치료 방법이 사이코패스에겐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 로버트 헤어의 냉정한 진단이다. 오히려 치료와 교정을 시도할수록 범죄 재발률은 가파르게 상승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사이코패스를 치료하는 길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오늘 신문을 보니, 다른 도시에서 유사한 연쇄성폭행 범죄가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신문에 난 사건이 단순히 호기심으로 시작한 모방범죄인지, 아니면 다른 사이코패스들의 ‘마음 속 괴물’을 자극해 벌어진 사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참 고약한 일이다. 사이코패스를 치료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이코패스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정적인 방식으로 각인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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