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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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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시절’은 없었노라 탄식하다
부끄럽고 고단한 과거를 향해 손길 내미니
가슴 속에서 터져나오는 꽃봉우리 노래, 노래들!
색색깔 44편 꽃노래가 흐드러지게 피다
꽃이 예쁜 까닭은 그것이 유한한 데에 있다. 때가 되면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사시장철 한사코 피어 있는 꽃을 상상해 보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꽃이라면 더 이상 귀하거나 애틋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지겨워지지나 않을까. 이 꽃 저 꽃 다투어 피어 있던 꽃철에는 꽃이 귀한 줄 모르다가 꽃이 지고 없는 겨울에야 새삼 꽃이 그리워지는 심사에는 이런 곡절이 숨어 있다.
입춘이 코앞이라고는 해도 개화(開花)까지는 아직도 동안이 뜬데, 색색깔 갖은 꽃으로 화사한 시집 한 권이 반갑다. 송기원씨의 꽃 주제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이다. 꽃을 노래한 시 44편에 화가 이인씨의 그림이 곁들여졌다. 송기원씨는 대개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1974년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함께 당선되었고 시집도 두 권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새 시집은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와 <마음속 붉은 꽃잎>에 이어 15년 만에 나왔다.
지난 가을 석 달 동안 술 익듯 시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노라고 당자는 밝혔다. 시집에 묶인 44편의 시 중 일부는 잡지에 발표도 했지만(<마음속 붉은 꽃잎>에 들어 있던 네 편의 꽃시도 다시 실렸다), 대부분은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새내기들이다.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어리석도다/내 눈이여.//삶의 굽이굽이, 오지게/흐드러진 꽃들을/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지나쳤으니.”(<꽃이 필 때> 전문)
시집 첫머리에 ‘서시’로서 앉혀진 작품이다. 시집의 제목도 여기서 왔다. ‘꽃시절’이라는 말을 비유적으로 쓸 때,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고 화려한 무렵을 가리키게 된다. 누구에게나 꽃시절은 있을 터이다. 더 나아가자면, 꽃시절이 아닌 무렵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꽃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것이므로.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희에게 꽃시절은 없었노라 탄식한다. 시인이 꽃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자신의 그런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에 기반한다. 시집을 내고 기자들과 만난 그는 “어려서부터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데서 오는 자의식에 시달렸고 부끄러움과 자기 혐오가 퇴폐와 탐미로 나아갔다”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지자 내게는 그런 상태가 바로 꽃으로 보였다”고 꽃시를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시인은 “얼핏 보면 정신분열증 같은 시집”이라고도 말했다. “불가의 선시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주 야한 작품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시가 술 익듯 부글부글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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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배꽃>(한지에 분채, 아크릴릭, 37.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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