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양극화 해소 노력은 19세기에 싹텄다

산업혁명 이후 형성된 영국 도시 빈민가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공급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 영국의 법률가 채드윅과 프랑스의 의사 비예르메는 사회적 관점에서 건강과 질병 문제에 접근하며 위생개혁을 주창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 도시빈민층 형성
영국서 빈민 위생상태 조사한 법률가
프랑스서 가난과 사망률 통계로 밝힌 의사
건강을 개인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
법률·행정 조처 시행되도록 이끌어

의학속 사상/(16) 위생개혁운동: 채드윅과 비예르메

의학은 개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위생개혁운동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그와 함께 사회 전체의 모습도 크게 변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도시에는 농촌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정치나 종교의 중심지였던 도시 이외에도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로 유럽 여러 지역에 거점이 되는 상업도시들이 발달했고 큰 시장이 형성된 이러한 도시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에 벌어진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은 이와 다른 이유와 차원에서 진행됐다. 먼저 도시에 공장이 세워지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촌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직 자신의 노동력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들은 공장노동자이자 도시빈민층을 형성했다. 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의 좁은 곳에서 집단적으로 거주했는데 이러한 주거조건은 전염병의 발병과 전파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도시빈민거주지에서 발생한 전염병들은 단순히 그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의 나머지 부분으로 퍼져나가 도시 전체, 나아가서는 그 지역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불결한 위생환경에서 비롯되는 전염병의 관리는 단순히 빈민층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유지하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위생개혁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나게 됐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도시위생의 악화는 산업화와 공업화의 부산물이었으므로 이런 문제가 산업화와 공업화가 진전된 곳, 곧 영국과 프랑스에서 먼저 발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위생상태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에드윈 채드윅(1800~1890년)과 프랑스의 루이 르네 비예르메(1782~1863년)였다.

산업화의 그늘 도시 빈민가

먼저 채드윅에 대해 살펴보자. 영국의 위생개혁운동을 선도한 채드윅은 의사가 아니고 법률가였다. 그는 법률가로서 구빈법에 관여하다가 다른 의사들과 함께 1842년 영국노동자계급의 위생상태에 대한 그의 유명한 보고서를 작성해 발간했다. 그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의사인 아놋 박사와 함께 에딘버러, 글래스고, 맨체스터, 리즈 등 영국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했는데 특히 빈민층의 거주지를 찾아가 그들의 주거환경과 위생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보충적 자료를 통해 그 실태를 파악했다. 채드윅은 이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작업이 질병이 생겨난 뒤 이를 치료하는 사후적인 것이 아니라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혔다.

“질병이 출현하고 난 이후 그에 대한 치료법을 찾는 모든 탐구를 포기하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해악들을 예방하기 위해 이용 가능한 최선의 수단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나는 각종 증언들과 보고서를 검토했다.”

곧 그는 단순히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일부 사례들만을 통해 사태를 평면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시에 그가 얻을 수 있었던 지역별 사망원인 통계와 같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이 문제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가 작성한 이 방대한 보고서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특히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을 강조했다. 먼저 불량한 위생환경, 상하수 시설의 미비, 과밀주거환경 등은 질병, 높은 사망률, 짧은 기대수명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증거로 그는 고용주에 의해 좀더 위생적인 작업환경과 생활환경을 제공받은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경의 노동자들에 비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두번째는 건강하지 못함에서 초래되는 경제적인 비용에 관한 것이었다. 세번째는 빈곤과 나쁜 주거환경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에 관한 것이었다. 곧 비위생적 환경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몸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과 관습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논점이야말로 채드윅의 보고서가 사회정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열악한 주거환경이 질병뿐 아니라 방종과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된다고 한 채드윅의 주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비참한 상태를 그들의 개인적인 성격적 결함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중산층의 일반적인 믿음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행정적 제도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현존하는 법률적, 행정적 장치들이 그가 직접 보고 파악한 보건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공중보건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근원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는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란 점을 간파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단일한 법률의 제정과 일관성 있는 실행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그는 역설했다.

사회적 차원에서 위생상태 개혁을 애쓴 채드윅

채드윅이 영국의 위생개혁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프랑스의 위생개혁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은 비예르메다. 영국과 프랑스의 위생개혁운동은 거시적으로는 공통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이념이나 실천 방식에 있어서는 두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의 차이를 반영한다. 프랑스 공중보건 모델의 특징은 과학성의 강조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법률가였던 채드윅이 영국의 위생개혁운동을 대표했던 것과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의사였던 비예르메가 프랑스 위생개혁운동의 대표자로 활동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는 파리임상의학파의 과학적 의학과 당대 프랑스의 실증주의적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학성 강조한 프 공중보건

공중보건 분야에서 과학성의 강조는 통계학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나타났다. 의학에서 피에르 루이가 통계학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것과 같이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비예르메가 통계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는 통계학을 무기로 공중보건 영역에서 통용되던 막연한 이론들을 하나하나 논파하고 공중보건학의 과학적 토대를 확실하게 세웠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는 질병의 발병 양상과 사망률을 기후와 장소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소위 기후의학, 지리의학이 유행했다. 여기서는 강과의 근접성, 표고, 바람의 방향, 온도와 습도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거론됐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의거해 좀더 건강한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가 구별됐다. 그런데 비예르메는 도시별, 지역별 사망률과 질병 통계를 통해 기후의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건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지역 거주자의 유병률과 사망률이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지역보다 더욱 높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편, 1820년 당시 가난과 풍요가 사망이나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두 개의 이론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문명의 진보, 그리고 그 결과인 풍요가 인간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반면, 루소적 자연주의의 입장에서 선 이들은 문명의 진보는 곧 타락이므로 물질적 풍요로 인한 안락함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양측 의견의 팽팽히 대립은 비예르메가 빈민거주지역의 사망률이 중산층 거주지역의 사망률보다 월등히 높다는 객관적 통계를 제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과학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프랑스 공중보건의 특징은 중앙집권적 행정기구를 통해 필요한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는 데 있었다.

여인석/연세대 교수·의사학

이것은 일찍부터 발달한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관료조직 덕분에 가능했는데 여기에 영감을 받은 채드윅은 이를 영국에도 도입하려고 하였지만 지방분권적 성향이 강했던 영국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사회 전체의 의료화를 통해 공중보건 문제에 접근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위생개혁운동이 보여주는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 이후의 달라진 사회 환경은 산업화를 겪고 있는 모든 사회에 대해 공통적으로 이전의 개인중심적 접근방법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접근방법, 곧 사회적인 관점에서 건강과 질병의 문제에 접근하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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