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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번성하던 광산도시였으나 우라늄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유령의 도시로 변한 와이오밍 주의 제프리 시티. 그러나 제일침례교회는 커티스 블랙맨 목사의 집념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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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7)
와이오밍 주 제프리 시티(Jeffrey City)는 한 때 인구 5천명의, 날로 번성하던 마을이었으나 우라늄 광산이 문닫으면서 유령마을로 바뀐 곳이다. 가는 길은 해발고도 2천m의 그레이트 디바이드 베이슨(Great Divide Basin)이라는 분지형 사막에 나 있다. 길 자체는 평탄했지만 막판에 불어온 바람 때문에 동작이 슬로 모션으로 바뀌고 숨이 턱에 찼다. 제일 침례교회는 마을의 외진 곳에 있었다. 비포장 흙길이어서 자전거가 나가지 않는다.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교회 옆에 있는 간이주택(트레일러 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목사 커티스 블랙맨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 목사는 교회 곳곳을 안내하면서 교회를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개방한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몸이 녹초가 돼서 빨리 앉고 싶은데 말이 계속 이어진다. “이 마을에 있는 모텔과 식당 주인이 교회 신도라서 그들의 처지를 감안해 라이더들을 받는 것을 몇 년 전에 중단했다. 지난해에는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져 간호하느라 더욱 더 못 받았는데 올해 3월 목사들의 회합에 갔다가 기도하던 중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네게 보내겠노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 마침 모텔도 문을 닫게 돼서 라이더들에게 교회를 개방하고 있다.” 한때 광산도시로 번성했던 제프리 시티
우라늄 폐광돼 160명 거주 유령마을로
숙소로 찾아든 교회서 만난 노목사
전도에 열성이다 못해 ‘진드기 작전’
신자수 18명…집념 이해할 만하다 지금까지 묵은 교회들은 장소만 빌려주지, 전도는 하지 않았으나 블랙맨 목사는 달랐다. 자신이 뒤늦게 목사로 전신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저녁 성경공부에 참가할 의향이 없느냐는 묵시적 권유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공략했다. 나는 목이 말랐고 그저 앉고만 싶을 뿐이다. 세상에 카우보이용 성경이 따로 있다. 성경책 제목은 <카우보이의 길(The Way for Cowboys)>이다. 총천연색의 이 성경은 말을 타고 소의 뿔을 뽑고 로데오 경기를 하는 카우보이들의 간증을 중간중간에 삽입하고 있다. 초콜릿 툭 던져주며 먹으라고? 한국에서 왔다고 한 게 잘못이었다. 그는 한국과 맺은 깊은 인연으로 들어갔다. 신학교를 다닐 때 한국인 동료들이 있었고, 성가를 전공하는 아들이 다니는 음악대학원에도 한국학생들이 있으며 예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한국인이었으며… ‘그만해’ 하마터면 소리지를 뻔했다. 그가 마침내 교회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나는 “바이, 바이”라고 인사했는데 인사라기보다는 다시는 보지 말자고 쐐기를 박는 어조였다. 미안해서 “다시 봐요”라고 급히 덧붙였지만 목사는 이미 전도 효과가 없었다는 걸 알아차리곤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교회에 붙은 실내체육관의 농구 골대 밑 콘크리트 바닥에 슬리핑 백을 깔고 누웠다. 지금까지 잔 곳 중에서 가장 천장이 높은 곳이다. 저녁 성경공부가 시작되기 전 교회를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목사를 마주치고야 말았다. “배가 고파서 마을에 저녁 먹으러 간다”고 양해를 구하고 잽싸게 빠져나갔다. 마을은 몰락한 지 오래인 듯 번성하던 흔적도 많지 않았다. 지금도 문을 연 캠프장의 길 이름은 방울뱀 길(Rattlesnake Road). 장기간 묵고 있는 몇 대의 캠핑카 외에는 황량하게 비어 있다. 누가 방울뱀 길가에 텐트를 치고 싶을까 싶다. 그리고 보니 교회도 먼지 악마 길(Dust Devil Road)에 있다. 악마의 길을 통해야 교회에 갈 수 있다는 얘긴데, 흠, 어쩌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큰 길가에 있는 술집 겸 카페에는 여자 바텐더와 중년 남자 손님 한 명밖에 없이 휑하다. 이 바텐더는 스탠드를 사이에 두고 손님과 맞담배를 피고 있다가 나를 뻔히 올려다 봤다. 장사하겠다는 뜻이 없는 표정. 담배를 많이 핀 탓인지 고르지 않은 치열이 누렇고 기름통 몸매에다 눈매까지 매서웠다. 거기다 사나운 말투까지 겸비했으나 가히 바텐더로서 이상적인 조건을 두루 갖췄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아무 거나 먹을 걸 달라고 했더니 케찹병, 겨자병 그리고 나중에는 키스 초코릿 하나 던져 주면서 그게 먹을 것의 전부라고 말했다. 장난인지 박대인지 분간이 안될 만큼 얼굴에 표정이 없다. 손님이 스테이크라도 만들어주라고 내 역성을 들어줬다. 이 바텐더는 “그럼, 네가 만들어주지 그래?” 하고 되받는다. 이 손님이 내게 호기심을 보였다. 역시 주한미군 출신이다. 내게 맥주 한 병을 사줬다. 지금까지 만난 주한미군 출신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하나같이 좋게 얘기했고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얘기하는 게 즐겁지 않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한국은 내가 잊고 싶은,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예의 바르고… 판에 박힌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피자와 같다 어쨌든 마이크라는 52살의 이 아저씨는 자칭 바텐더에게 정 음식을 안 만들어주면 진짜 자기가 부엌에 들어가겠다고 압박했다. 바텐더는 하는 수없이 담뱃불을 끄고 햄버거와 양파튀김을 만들어왔다. 고맙다고 했더니 마이크한테 고마워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마이크와 잡담을 시작했는데 “저 아이(kid)한테는 말하지 마” 하고 말하는 게 들렸다. 계속 엿듣는데 자신이 내년이면 36살이 된다는 것 아닌가.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고 ‘아이’라고 부른 것을 그냥 넘어갔었다. 장유유서의 나라에서 온 내가 가만 있을 리 없다. “나, 마흔 하난데 나보고 아이라고 했어?” 이 여자, 넉살은 좋아서 대답하길, “어, 그래. 바텐더는 말이야. 여자친구이기도 하고, 상담자이기도 하고, 부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모든 게 다 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난 아무한테나 아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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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 빈 마을을 영양의 떼가 접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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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5살이라면서 나보고 “키드”란다 그래서 “고마워 엄마”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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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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