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이 막힘없이 뻥뻥 뚫리는 낯도깨비 같은 사람이었지”
70년대 ‘티브이 캔들’ 보고“범상치 않은 작가” 직감
‘굿모닝 미스터 오웰’ 계기
국내에 작품들 첫 소개
“사는동안 원하는것 다 해봐
여한이야 없겠지만…” “백남준은 동년배예요. 같은 32년생이지만 내가 생일이 하루 빠르지. 부음을 접하면서 그가 써줬던 옛 전시 서문이 자꾸 생각나더군요.” 거장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판화 작업들을 8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컬렉터 정기용(74·전 원 화랑 대표)씨는 90년 백남준과 함께 전시했던 요셉 보이스 추모전 도록을 먼저 보여주었다. ‘보이스 복스’란 제목의 이 전시는 백남준이 1986년 숨진 동료 보이스를 기려 원화랑과 현대화랑에서 열렸다. 백남준이 작품 출품은 물론 굿판까지 벌였던 당시 전시의 도록에는 그의 서문과 회고담이 실렸다. 정씨가 보여준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도 이제 쉰에서 다섯이 넘었으니 차차 죽는 연습을 해야겠다. 예전 어른이면 지관을 데리고, 묘자리를 찾아다닐 그런 나이가 됐으나, 돈도 없고 요새는 땅값도 비싸졌으니… 오붓하게 죽는 재미를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
|
1992년 8월 정씨와 백남준씨가 원화랑에서 기획했던 ‘존 케이지’추모전 전시장 전경(왼쪽). 케이지의 악보 외에는 모두 백남준의 작품이다. ‘귀거래’란 문구가 적인 전통부채, 케이지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물, ‘바람바람’이란 친필 글씨, 촛대 등이 보인다. 정기용씨 제공
|
언론을 만나길 꺼리는 편인 정씨가 백남준의 80~90년대 국내 전시에 얽힌 추억들에 대해 7일 처음 입을 열었다. 아울러 파일함 7~8상자 분량의 사진, 서류, 친필 문서 등 수북한 백남준 관련자료도 최초로 <한겨레>에 공개했다. 그는 7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텔레비전 상자 안에 촛불을 켠 고인의 ‘티브이 캔들’을 처음 보고 범상치 않은 작가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백남준과 보이스의 판화를 보러간 적이 있었지요. 백남준이 하이델베르크 성 아래를 어슬렁거리다 신발 한짝을 잃어버렸어. 퍼포먼스? ‘당신 왜 그 모양이야’하고 면박을 줬더니 백남준이 ‘내 나이쯤 되보면 안다’고 둘러대더군. 나이를 물었더니 같더라구요. 생일도 따져봤는데 7월20일이야. 내가 19일이니 하루 차이로 형님뻘이 된다고 했더니, 거짓말 말라고 펄쩍 뛰더군. 주민등록증 보여줬더니 ‘암만 해도 가짜야’라고 계속 투덜거리더라구….”
|
백남준이 정씨에게 보낸 연하엽서.
|
|
1990년 국내에서 보이스 추모 굿판을 벌일 때 무당으로 분장한 백남준.
|
|
설치조형물 ‘다다익선’앞에서 정기용, 박명자 현대화랑 대표와 같이 앉은 백남준. 정기용씨 제공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