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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지숙 이화여대 국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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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대학별곡
2002년 월드컵의 열기에 취해 있을 때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은 참으로 불행했다. 시청 앞을 메운 붉은 악마들의 무리에 자신이 속하지 않음이 원통했고, ‘월드컵 보지말고 공부하라’는 선생님은 야속했다. 물론 대통령도 보고 군인도 보고 죄수들도 보는 월드컵을 ‘고딩’이라고 해서 안본 건 아니다. 그러나 보통 16강에서 끝나줬던 한국팀이 8강도 가고 4강도 가는 동안 수능 날짜는 착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월드컵이 끝난 다음 온 국민들이 달콤한 허무감에 빠져있을 때 고딩들은 누가 더 빨리 수능 전쟁 속으로 돌아오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펜을 잡으며 이렇게 되뇌었다. “4년 후엔 독일, 가는 거야~!” 그 때의 꿈을 드디어 실현하는 대학생들이 있다. 수능을 앞두고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월드컵을 즐겼다는 중앙대 박충만(컴퓨터공학 2년 휴학 예정)씨. 폴란드전을 보러 부산에 가는 그에게 마지못해 조퇴를 허락하던 선생님은 들뜬 그의 뒤통수에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은 포기하는 거지?.” ‘대학생이 되면 꼭 독일에 가서 월드컵을 보리라’ 다짐한 그. 붉은 악마 회원으로서 독일원정을 앞두고 있는 요즘, 매일 밤 경기장에서 태극기 흔드는 꿈을 꾸고 있단다. 자유로운 대학생이라지만 아무나 독일에 가는 것은 아니다. 준비된 자만이 갈 수 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식당 서빙으로 꾸준히 돈을 모아 만만찮은 독일원정 비용을 냈다. 여유있게 월드컵을 즐기기 위해 오는 학기는 아예 휴학을 했다. “직장인은 시간이 없고, 고등학생은 돈까지 없죠. 하지만 대학생은 다르잖아요.” 박충만씨의 말대로 대학생은 독일원정을 떠나기에 가장 홀가분한 신분인 듯싶다. 숭실대 이경미(화학 3년)씨는 “돌볼 가족이 있거나 직장인이 되면 쉽게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동시에 부모님의 감시를 받는 중고등학생도 아니니 원정을 떠나기에는 더없이 좋은 때”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월드컵 때문에 재수를 한 듯하다”며 웃는 숙명여대 김민정(경제학 2년)씨도 이젠 떳떳한 대학생으로서 독일행 비행기를 탄다. 그는 “직장인은 온갖 휴가를 모아봤자 경기만 잠깐 보고 와야 하는 반면 시간이 많은 대학생은 월드컵을 여유있게 느끼고 올 수 있다”며 “월드컵을 보고 난 뒤 유럽 여행까지 하고 귀국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대다수의 대학생은 방학을 이용해 ‘독일 간 김에’ 유럽 여행까지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휴학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겐 난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기말고사다. 대표팀 경기 기간과 기말고사 기간이 일주일 정도 겹치는 것. 그것마저 독일 원정대에겐 정복의 대상이다. 경희대학교 정리구(경제통상학부 4년)씨는 “이번 학기는 일부러 남자 교수님 수업으로만 골라 신청했다”고 설명한다. 아무래도 축구 좋아하는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란다. “먼저 보게 해주거나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최악의 상황이라도 독일행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학점에 건투를 빈다. 숙명여대 김민정씨는 제일 먼저 열리는 토고전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하지만 프랑스전, 스위스전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교수님께 사전에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의 답변은 “너무 부럽다. 기말고사 문제없게 해줄테니 젊음을 만끽하고 오라”는 것. 이것이 바로 대학생의 특권인 것이다. 월드컵이 온 국민의 축제라 해도, 수험생 신분과 대학생 신분을 더 명확히 가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 대학생이 되어 독일에 갈 꿈을 꾸던 한 지인이 재수를 하게 됐다며 원통해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니, 201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렴. 김강지숙/이화여대 국문과 4년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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