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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가 된 지하철 동영상의 몇 장면이다. | 
눈에 띄지 않는 연극
-지하철 결혼식에 대해-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
					 
 
 일명 '지하철 결혼식'으로 알려졌던 가난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연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한 남자가 승객들에게 자신은 고아라며 돈이 없어서 예식장에서 결혼을 올리지 못하니, 서로가 처음 만난 지하철 5호선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며 옆에서 울고 있는 여자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다. 이것이 우연히 어느 폰 동영상에 담기게 되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뜨거운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나도 이 동영상을 보고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속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같은 장소의 타인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는 것. 형식적인 예식장에서의 결혼보다 아름다운 것은 분명했다. 이 날 결혼한 다른 연인들은 분명 이 아름답게 빛나는 누추한 연인을 시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하철 결혼식이 연극으로 밝혀졌다. 신부 역을 맡은 여학생의 어머니가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지하철 결혼식은 호서대학교 연극영화과 동아리인 <연극사랑>의 단원들이 연출·연기한 연극으로 드러났고, 연출을 맡은 신진우 씨는 "각박한 세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기 위해 상황극을 꾸몄다"고 말했다. 이 소식에 많은 네티즌들은 분노하고 있다. 속았다고 분해하기도 하고, 동영상이 퍼진 것은 고의가 아니었겠지만 지하철의 사람들에게라도 연극이었음을 말해야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연극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극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 구나 싶어서 어쩐지 행복했다. '이런 연극'이라니?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이다. '눈에 띄지 않는 연극' 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전략)··· 관객과 배우의 구분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참여 연극'이나 '눈에 띄지 않는 연극'등이 있다. 이는 모두 참여자의 성장과 사고의 전환, 그리고 특정한 사실을 학습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연극이다. ···(후략)··· 출처 : 네이버 카페 '생활연극 네트워크' 원문보기 : 김은형 - '교육에서 연극의 역할과 방향'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은 말 그대로, 관객과 배우의 구분이 없는 연극이다. 해서, 관객들은 자신이 연극의 관객이었는 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관객이면서 동시에 그 연극에 참여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더 활발한 이 연극의 형태가 우리 나라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은 나로선 매우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눈에 띄지 않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부터 모든 검색 사이트를 뒤져보았지만 전문적으로 소개해놓은 사이트 하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구나' 하는 마음에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괜히 풀이 죽어 있었는데, 사실로만 알고 있던 지하철 결혼식이 연극이었다니!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은 말 그대로 허구인 '연극'에 지나지 않지만 그 연극의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예를 들어봐야 쉽게 이해가 된다.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의 전형적인 예를 들어보자. 식당에 세 남자가 들어간다. 훌륭한 경양식 집이다. 이 세 남자는 이제부터 연극을 시작한다. 음식을 주문해 식사를 하고 나가려다가 갑자기 셋 모두 돈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동에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 손님들이 바로 그 연극의 관객들이 되는 것이다. 종업원은 당연히 안된다고 말하지만 세 남자 모두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너무 비싸요!" 당황한 종업원에게 이 세 남자들은 꼬치꼬치 캐 물으며 연극은 무르 익는다. 필자가 가상의 대본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배우1 우리가 먹은 음식의 재료비가 총 얼마지요? 종업원 잘은 몰라도 5000원은 들어갑니다. 배우1 그러면 5000원만 받아야지 왜 이렇게 가격이 비싼 것이오? 배우2 식당 아주머니들의 시급은 얼마지요? 종업원 2000원입니다. 배우2 그럼 우리도 1시간동안 식사를 했으니 7000원을 받아야지. 배우3 아니지, 여기 청소하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소? 종업원 예, 그 분들은 시급 1500원 드리고 있습니다. 배우3 그럼 음식 가격이 8500원이어야지. 당신은 얼마 받소? 종업원 전 시급 2500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식당에서 먹는 음식에 들어간 노고를 일일이 나열하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로 하여금 그 세세한 정성을 알게끔 하는 것이다. 이 연극에 관객이 된 손님들에겐 그냥 지나가는 해프닝일진 모르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손길을 느끼게 되면서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세 남자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배우들 우리는 노동자요.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이런 경양식 집에서는 한 끼도 제대로 식사할 수 없다오. 하루종일 피와 땀을 흘려 번 돈으로도 이런 집의 음식은 꿈도 꾸지 못하오.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소. 이 음식을 만드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께서 과연 이 음식을 본인들의 돈으로 직접 사서 드실 수 있는지 말이오. 여기 앉아계시는 분들은 부유하여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겠지만 한 순간이라도 그들을 생각해주시길 바라오. 마음이 동한 몇몇 손님들이 이 세 남자에게 음식값이 될만한 돈을 쥐어준다. 연극값이다. 실제로 감동한 관객에게 받은 연극값이기에 배우들에겐 소중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극에는 배우인 남자 셋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종업원도 배우가 되었고, 돈을 쥐어준 손님들도 배우가 되었다. 관객이었던 자가 배우가 되기도 하고, 배우였던 자가 관객의 입장이 되기도 하는 이 연극이 바로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이다. 그러나 연극이라고 해서, 이 세 남자가 다른 이들을 '속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물론 허구이지만 악의가 있는 허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배우들 자신들이 이 세상에 아주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던 숨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알린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지하철 결혼식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이 배우들과 연출자도 자신들이 한 연극이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이었음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지 않는 연극으로 실제 지하철 안의 관객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진정 사랑하는 연인임에도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할 수 없는 현실과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처음 만난 지하철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따뜻한 사랑 이야기는 그것이 설령 '연극'이라고 해도 악의가 담긴 연극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기 위한' 연극이었지,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연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배우가 아닌 우리들도 가끔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스승의 날 선생님을 위한 작은 파티를 준비해놓고 그렇지 않은 척 거짓 연기를 할 때가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도록 많이 아픈 것처럼 꾀병을 부릴 때가 그렇고, 또 모양새 다른 여러 연극을 한다.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관객들에게 상스러운 욕을 마구 하는 형태의 <관객모독(Publikumsbeschimpfung)>이라는 작품 역시, 객석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관객들이 극 속에서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페터 한트케의 아이디어다. 1966년 시작된 이 연극이 아직까지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배우와 관객의 구분을 없앴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무대 자체가 아예 없고 관객이 관객이 되었는지도 모르게끔 하지만 특별한 대상이 없는 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이야말로 어쩌면 연극이 갖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메세지가 아닐까 한다. 지하철 결혼식이 문제가 된 이유는, '눈에 띄지 않는 연극'이기에, 눈에 띄지 않았어야 했지만 눈에 띄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철 관객들을 속이기 위한 연극이 아니라, 동아리 단원들이 생각한 진정한 사랑을 연극에 담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따뜻하게 보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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