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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경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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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대학별곡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사람은 살면서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 이 시대의 대학생에겐 믿고싶지 않은 말. 거리도 멀다. 오죽하면 대학교에서 다독상까지 수여할까. 경희대, 동의대 등지에선 몇 년 전부터 다독상 제도를 신설, 상장과 상품을 학생들에게 줘가며 독서를 독려한다. 어떤 대학의 1등 상품은 무려 해외어학연수! 당근 없이 대학생은 책 속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독서는 대학생에게 힘이 아니라 짐이다. 하준형(서울대 기계항공 4년)씨는 “책을 읽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전공 공부하다보면 시간이 없어요. 전공보다 교양 도서를 중요하게 여길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내 인생, 책 없이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람도 있다. 책보다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웹서핑을 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성결대 송영주(전자상거래 4년)씨. “리포트를 쓸 때도 그렇죠. 중도에 가서 책을 찾는 것보다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나요?” 검색 사이트에 중요 단어만 입력하면 관련 서적의 쪽까지 찾아주는 세상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책은 그저 베고 자기 좋은 두께면 딱이다. 이쯤 되면 요즘 대학가에서 유행한다는 북카페의 정체가 수상해진다. 설마 독서카페? 연세대 유현진(심리 4년)씨는 “책을 읽으러 간다기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러 가죠”라고 전한다. 그렇다. 최근의 북카페는 그야말로 멀티카페다. 책도 물론 읽을 수 있지만, 디브이디나 심지어 족욕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찜질방에 책 갖다놓은 것과 별 차이 없다. “그냥 카페보다는 뭔가 좀 있어보이고 독특하잖아요.” 책은 장식이 되고, 독서공간 자체가 신선한 아이템이 되어가는 실정이다. 지난 시대, 양식의 곳간 노릇을 했던 고려대 앞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장백서원과 숭실대 앞 글사랑은 책을 외면하는 대학생과 어울리지 못하고 문 닫은 지 오래다. 우리 나라 최초의 사회과학 서점인 건국대 앞 인서점은 문 닫았다가 석 달 여만인 지난해 12월께 이 학교 동문회 등의 힘을 빌어 겨우겨우 다시 문을 열었다. 이 서점들의 실체를 모르는 학생들만 이젠 학교를 가득 메운다. 책을 외면하는 현 세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많다. 송종호(고려대대학원 정치외교)씨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검색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자료도 누군가 공부해서 올린 것인데 그런 자료만 접하다보면 결국 남이 아는 것만 알게 된다는 것. 지척 곳곳에 책이 있다. 도서관만 가도 온갖 학술정보지, 숱한 장르의 책이 널려있다. 이런 여건에서도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 아니냐고 그는 되묻는다.최근 <적은 내 안에 있다>라는 자기계발서를 출간한 남강(경희대 언론정보학부 97학번·휴학 중)씨는 대뜸 “책 같은 건 읽지 않아도 좋다”고 당황스런 말을 날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한 권의 거대한 책이고, 숨을 쉬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책을 읽고 있는 거니까요. 다만, ‘조금 더 잘 살고 싶고, 좀 더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싶다면 그만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연습에 책만큼 효과가 큰 것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다섯 수레는커녕 다섯 바구니도 부담스러운 요즘 대학생. 입 안에 가시가 돋다 돋다 고슴도치가 되기 전에 책 한 권 읽어보는 게 어떠실지. 조은경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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