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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도 책방 차리셨나요?
‘헌책방계의 신사’로 불리는 삼우서적(서울 관악구 소재) 주인 유길종(64)씨가 지난 14일 타계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신림 9동에서 지금의 자리인 낙성대 입구로 이사하면서 책짐을 무리하게 옮긴 게 직접 원인이 되어 3년여 동안 기관지확장증으로 투병을 하다가 끝내 일어서지 못한 것. 그의 부인 이영자(60)씨는 오랫동안 헌책방을 하면서 먼지를 마셔서 생긴 직업병 같다고 말했다. 전남 고창에서 17, 8세에 상경해 청계천의 한 서점 점원으로 헌책방 일을 시작한 이후 봉천동 고개, 봉천동 사거리, 신림9동, 낙성대 근처를 옮겨다니며 ‘삼우서적’ 간판을 달고 40여년동안 책손님들에게 책을 공급해 왔다. 그는 ‘국졸’임에도 독학으로 공부해 한문과 영문은 물론 독, 프, 일문을 독해하여 각계각층의 고객이 원하는 책을 찾아내 응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책방주인들이 책을 사고팔 때 서지나 가격 등을 물을 정도로 헌책방계에서 그의 박식함은 널리 알려졌다. 청계천 점원으로 출발 40여년 ‘책 사랑’국졸로 영·독·프·일어 독학 ‘서적상 스승’
좋은 책 제값 주고 희귀본 비싸게 안팔아 유씨의 책 욕심은 별달라 책이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 샀다고 한다. 특히 좋은 책이 나오면 돈을 빌려서라도 사들여 구색을 맞췄고 구입한 책들은 닦고 붙이고, 사포로 문질러 새책처럼 만들었다. 결혼과 함께 책방일을 도와온 부인 이씨는 남편이 구입한 책을 바로 책꽂이에 꽂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젖은 책은 갈피마다 다른 종이를 끼워 말리고 다림질을 했고 중간에 떨어진 페이지가 있으면 반드시 책밑에 ‘O페이지 결’이라고 표시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되지만 일단 복원해 공급하면 필요한 사람한테는 귀중한 자료”라면서 “수고비도 안 나온다”며 만류하는 아내를 달랬다. 1974년 책방을 시작할 때 유씨한테서 책을 생명 대하듯이 예우하는 태도를 배웠다는 인천 아벨서점 주인 곽현숙(55)씨는 “그 분의 엄지손가락은 물걸레와 본드에 절어 늘 째지고 갈라져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그분은 책을 통해 도를 닦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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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우서적 주인 고 유길종씨는 책-손님 중간에서 충실한 전달자 역할을 자임해 왔다. 고인은 생전에 서울 봉천동 낙성대의 헌책방에서 책의 숲에 파묻혀 휴일도 없이 일하곤 했다. 최종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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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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