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09 18:33 수정 : 2006.03.09 18:33

휙∼먹선 한줄 바지저고리 펄럭


‘바지저고리만 그리는 만화가’. 만화계에서 이 호칭은 단 한 명에게만 붙는다. 물론 ‘소 엉덩이에 붙은 소똥까지 그려내는 만화가’ 오세영씨도 있다. 하지만 바지저고리만 그리는 만화가는 이두호(63) 세종대 교수뿐이다.

우리 만화는 다른 장르보다 홀대받아오면서도 다른 어떤 장르보다 뛰어난 문화적 경쟁력을 갖추며 홀로 커 왔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불량’‘저속’이란 딱지를 달고 만화가 불태워지던 시절,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지금 우리 만화 수준을 끌어올린 주역은 이 교수 말고도 여럿이다. 그러나 만화가 가운데 ‘우리 것’을 자기 전공으로 삼아 천착해온 이는 그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처럼 우리 전통을 고집해왔던 이 교수가 그린 만화 가운데 찰턴 헤스턴 주연 <벤허>를 각색한 만화 <벤허>가 있었다. 이 교수 작품으로는 유명세도 덜했고, 인기도 아주 많지는 않았던 만화였다. 하지만 이 만화에는 이 교수 개인의 아련한 추억이 배어 있었다. 대구에서 상경한 미대생 이두호의 자취 시절, 생활비가 모자라 결국 아끼던 책을 팔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 열네번이나 영화 <벤허>를 봤던 가난한 대학생은 아끼고 아끼던 책 <벤허>를 팔아 쌀을 샀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마음의 양식을 팔았던 그 기억이 만화 <벤허>를 그리게 했다.

책 팔아 쌀 사던 미대생, 한국만화 거목으로
신라시대에 담배? 습작시절 추억까지 담아

이씨가 최근 펴낸 책 <무식하면 용감하다> (행복한만화가게 펴냄)에는 만화팬들이라면 궁금해했을 인간 이두호에 대한 진솔한 고백들이 담겨 있다. 이씨는 책에서 특유의 토박이말들을 살리는 구수한 글솜씨로 예술가로서의 일생을 옆집 아저씨가 살아온 이야기 들려주듯 이어가며 40년 만화인생을 정리했다. 신라시대에 담뱃대를 물고 있는 만화를 그렸던 중학시절 일화부터 최근에도 고증을 잘못한 일까지, 환갑을 넘긴 이씨는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 붉어질 법한 것들까지 솔직히 드러냈다. 혼을 내는 여교사에게 “이노무 가시나야, 와 때리노”라고 대들던 소년이 한국 만화계 거목으로 서는 과정이 텔레비전 <인간극장> 프로그램 장면처럼 이어진다.

97년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던 만화 <째마리>가 폭력성과 음란성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데 절망해 절필을 선언했던 일화 등은 만화가로서 그가 겪어야 했던 ‘시대와의 불화’가 불과 얼마전까지도 이어졌음을 깨닫게 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