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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3 19:25 수정 : 2006.03.13 19:25

왼쪽부터 김춘미, 강주헌, 최정수, 이종인, 송병선, 권남희씨

번역해서도 먹고 살고 있다니까요
번역자는 반역자이자 창조자랄까
원문만 신경쓰면 저자·역자만 만족
이혼서류 내던 날도 사전 뒤적거렸죠


“번역해서 먹고살 수는 있어?” 번역가 강주헌씨는 친구들의 걱정스런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잘 먹고 잘 산다.” 번역을 생계로 삼은지 8년 동안 촘스키 책 8권을 번역했고, 그 가운데 한권은 원산지 프랑스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많이 팔렸다. 번역기술 책을 한권 냈고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번역강좌를 맡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에이전시를 겸해 ‘잘 잘고 있다.’ 강씨는 저자의 생각을 가장 먼저 알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 △간혹 저자가 틀린 것을 찾아내는 재미 등을 번역의 즐거움으로 꼽았다.

이윤기, 안정효씨에 이은 2세대 전문번역가 6인이 <번역은 내 운명>(즐거운상상 펴냄)에서 자신들의 번역관, 번역에 얽힌 고민, 그리고 그들의 삶을 털어놓았다.

신간도서 중 번역서가 3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번역자는 출판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책 날개에 박힌 이름 석자 외에는 알려지지 않는 그림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중남미 문학이 전문인 송병선씨는 “번역가는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의 중심”이라며 “번역은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는 재창조물이라는 점에서 번역자는 반역자이자 창조자”라고 말했다. 인문·사회과학을 두루 꿰는 이종인씨는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번역은 아무리 원문에 충실해도 원저자와 번역자, 두 사람한테만 좋을 뿐”이라면서 우리말 특유의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어야 잘 된 번역이라고 말했다. 이들 번역가들은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외국어와 우리말 실력을 동시에 갖출 것을 이구동성으로 권했다.

이들의 생활은 어떨까. 번역가들은 하루 평균 5~10시간 규칙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아침형, 저녁형 등 작업시간을 달리하지만 자기 통제가 철저한 것만은 공통이다. 권남희씨는 “이혼서류를 내던 날도 사전을 뒤적거렸고, 이삿짐 옆에서도 노트북을 또닥거려야 했다”며 고단했던 삶의 단편을 보여주었다. 또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된다”며 본업으로 삼으려면 마음을 다잡을 것을 권했다.

번역자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도 불과 15~16년 전부터. 일본문학 전문 김춘미씨는 “1991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번역할 당시 공인된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는 없었다”고 번역 문학계를 소개하고 “대학교수한테 맡기면 비싸다며 기피하고 책을 10등분 해서 나눠 맡기면 하룻밤에 번역서가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당시 사정을 전했다.

코엘료를 번역한 최정수씨는 “번역 과정에서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작가가 배치해 놓은 은밀한 생각들을 읽어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며 가외의 즐거움을 전했다.


한편 번역가들은 맡겨진 일을 수동적으로 번역하기보다 좋은 책을 찾아 소개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고 입을 모았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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