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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지난 ‘행복의 나날들’
메아리 잃어버린 ‘인간 존재의 이유’ 영국의 미술가인 ‘팀 노블’과 ‘수 웹스터’는 일련의 쓰레기(?) 작품들로 매우 유명한 커플이다. 뉴욕의 모던 아트 뮤지엄(MoMA)의 분관인 컨템퍼러리 전문 뮤지엄인 P.S 1에도 이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제목부터가 <백인 쓰레기와 갈매기>다. 팀 노블과 수 웹스터가 6개월 동안 생활하며 그들 자신의 생활에서 나온 쓰레기를 빠짐없이 모아 만든 것으로, 앞쪽에 기름 묻은 갈매기가 엎어져 죽어있는 작은 쓰레기 산이지만 여기에 한 줄기의 조명을 아래로부터 비추면 저 멀리 벽에는 등을 서로 기대고 와인 잔과 담배를 들고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두 남녀의 모습이 그림자로 떠오르는, 허를 찌르는 작품이다. 팀 노블과 수 웹스터가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아일랜드 작가 새뮤얼 베케트의 연극 <행복한 나날들>을 떠올렸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연극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선명하게 그들의 쓰레기 작품이 떠올랐다. 베케트가 일약 부조리극의 대명사이자 세계적인 유명 극작가로 떠오른 1953년은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이 전쟁은 당연히 인간의 존재에 관한 깊은 회의를 불러 일으켰고 이후 오랫동안 세상은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가지각색의 질문과 대답을 거듭해 왔다. 그로부터 50년도 더 지난 2005년 현재 올려진 <행복한 나날들>이 던지는 질문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나 허무함, 부조리함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질문은 ‘존재’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고, 그에 대한 답은 한정적이다. ‘재미만 있다면’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오프-브로드웨이의 유서 깊은 극장 ‘클래식 스테이지’의 <행복한 나날들>은 불행하게도 유효하지 못하다. 주연을 맡은 레아 드레리아는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뮤지컬 배우로, 뉴욕의 가장 유명한 동성애자 배우 가운데 한 명이며 노래를 곁들인 스탠딩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러므로 그가 <행복한 나날들>의 주인공인 위니역으로 클래식 스테이지에 선다고 했을 때 관객들은 뭔가 색다른 ‘해피 데이’를,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왠지 그가 맡은 위니가 있는 한 <행복한 나날들>은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관객들은 뭔가 새로운, 연출가 코헨과 배우 드레리아가 불러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레아 드레리아는 물론 그를 캐스팅한 연출가 제프 코헨 둘 다의 실패로 끝났다. 노래를 부를 때는 그렇게 강력했던 드레리아의 목소리가 단절이 심한 대사로 가득찬 이 연극에서는 강약 조절에 실패하고 지나치게 잦아들어 안 그래도 지루한 작품을 더욱 더 지루하게 이끄는 요인이 되었고 그 자신이 카바레에서 관객의 시선을 끌어 모으던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배우인 터라 관객의 무덤덤한 반응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인간 존재의 부질없음은 2005년의 <행복한 나날>에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오늘날 관객들은 더이상 심각한 질문에는 응하지 않는다. 세월이 반세기가 지났음을 아는 것은 오로지 관객들 뿐일까? 이수진·조용신 공연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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