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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겨레말 한류 고갱이 삼아 세계화 나서야
‘세계화 폭탄’이 터진 지 십 년을 넘어서면서 그 여파가 갖가지 모양으로 파괴력을 자랑하고 있다. 겨레의 정신과 관계가 깊은 언어분야 역시 거의 무방비 상태로 열린 형편이다. 나라말의 연구, 정책 입안, 실천을 도맡은 국립국어원의 새 원장으로 부임한 이상규(54·1월27일 부임) 원장을 지난 00일 만나 어문정책 운영 방향을 들어봤다. ‘표준어’ 굴레 벗고 지역어 포괄…‘남북 하나의 언어’ 시대 올 것 -국어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흔들리는 판세입니다. 이런 때 중책을 맡으셨는데, 역대 원장 중에서 가장 젊은데다 지방대(경북대)에 재직한 분으로서 뿌리깊은 관학파 아성에 들어선 셈입니다. 각별한 포부나 철학이 있으실 듯합니다만? =글쎄요. 나이, 출신이 무슨 큰 문제겠습니까. 짧은 동안 느낀 점이지만 정부 조직은 물론이고 정부 기관에서 추진하는 개혁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절감하였습니다. 정체된 조직은 혁신이 필요합니다. 국립국어원처럼 소규모의 조직으로서 인적·물적 변동이 거의 없는 조직은 변화가 더 절실합니다. 국어원을 연구 중심에서 정책 생산과 제안,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곳으로 이끌 생각입니다. 세계화로 국어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세계화에 대한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 스스로 세계화의 변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세계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주체적으로 인식을 다잡아 개방과 세계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합시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겨레말 아닙니까? 이 자산을 세계화한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에서 열손가락을 꼽는 경제 대국인 동시에 문화 대국입니다. 한류바람의 중심에 겨레말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겨레말의 유산을 풍족하게 개발하고 이를 정보화하여 민족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영어교육 과열 위험수위
국제학교 ‘내국인 강사’ 잘못 -거듭된 화제입니다만, 영어 숭배와 교육이 도를 넘은 지 오래 됐습니다. 최근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육부의 이런 조처를 어문정책 담당 기관장으로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외국어 교육 문제와 국어발전 전략은 상보적이어야지 배타적으로 나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나치게 영어를 강조하여 국민 정서와 국어가 어지러워지고 있는 점은 분명합니다. 국어원뿐만 아니라 관련 학자, 어문 연구 단체 쪽과 협의하여 과도하다는 판단이 서면 마땅히 나설 것입니다. 최근에도 7차 교육과정 이후 국어교육 과정에서 문법과 문학 부문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당 부처와 협의를 통해 바로잡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개방과 세계화 조류를 내부 역량 강화로써 이겨나간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어기본법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최근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두루 국어책임관을 지정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예컨대 강제·벌칙 조항이 없다든지, 민간 쪽엔 규제가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렇습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단계적으로 보완·개정하도록 하고,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은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추진할 것입니다.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의 국어책임관을 활용할 방안도 이 달 중에 마련하여 국어와 관련한 사업을 함께 벌여나갈 것입니다. 특히 각 지역의 간판 등 도시경관의 핵심인 언어경관을 가다듬는 일부터 벌일 생각입니다. 이미 지정한 11곳의 국어상담소도 적절히 활용하면 가시적인 성과도 나올 것입니다. 머잖아 세계에서 상당수의 민족 언어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고유 어휘도 상당수는 소멸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한 방편으로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생활현장 용어나 지역어를 수집하여 고유어를 보완하는 노력이 시급합니다. 국어원에서는 이미 제정된 국어기본법을 기반으로 하여 앞으로 5년 동안 적용할 국어발전 종합계획을 올해 안에 입안하여 추진할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 각종 경제특구를 비롯한 특성화 지역 등에서는 앞다투어 외국인학교, 국제학교 따위를 세우고 이를 내국인에게도 개방해 교육 장사를 할 모양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외국에 한국 교육원이나 문화원을 신설하여 재외동포와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경제특구 등에 외국인을 위한 학교나 국제학교를 두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이를 가지고 내국인에게 장사를 한다면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민간 어문단체 지원 공모제로
국어책임관 이달중 역할 모색 -남북 언어통일이란 숙제가 있습니다. 최근 사단법인으로 출발해 작업에 들어간 ‘겨레말 큰사전’ 일과 국어원에서 벌이는 ‘표준국어대사전’ 보완작업이 상관관계가 적지 않은 줄 압니다. =숙원 사업이라고 할 ‘겨레말큰사전’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 줄 압니다. 언어자료 교류와 협력사업 추진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북한 쪽 용어가 많이 들어 있어 성격이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만, 이는 언어규범의 표준화 차원에서 보완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온라인상에 음성정보와 함께 자료를 제공하여 국민이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원주의의 언어정책, 곧 지역어를 포괄하여 국어를 진흥하는 쪽으로 언어정책의 방향을 잡는다면 남북 어문규범의 통일과 함께 ‘한 민족 두 언어’에서 ‘한 민족 한 언어’로 통합하는 날이 올 것으로 봅니다. 이는 ‘표준어’ 굴레에서 좀더 포괄적인 ‘공통어’로 확장하는 작업 등을 통해 지방어 자산을 활용하자는 말입니다. -민간 어문 연구 단체 지원책은 무엇입니까? 올해 국어원에서 중점적으로 펼 사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민간 어문연구 단체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부의 지원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도록 언론에서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혁신 차원에서 민간 어문단체 지원 방식도 공모제로 할까 합니다. 금년도에는 한국어의 국외보급 사업에 중점을 둘 예정이며, 한글유산 보존 차원에서 한글디지털박물관 보완과 더불어 임진왜란 이전의 주요 한글 목판본 복각사업도 아울러 추진할 예정입니다. -올해 터키어·아랍어·그리스어 표기법을 만드는 것으로 일단 외래어표기법은 마무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어문규범 전반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손볼 계획은 없으신지요? =어문규범은 매우 신중하게 처리할 사안입니다. 학계와 시민단체, 뜻있는 분들의 규범 개정 요구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남북 언어규범 통일 노력의 성과가 나오는 추이에 따라 조심스레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를 지나면서 국어도 그 이전 500년치를 넘어서는 큰 발전을 했습니다. 글자생활의 기계화, 수많은 창작물을 비롯한 인쇄물들의 정보화가 그 사롑니다. 한편으로 같은 기간에 한문·일본어에다 영어까지 겹쳐 우리말글이 몹시 어지러워졌습니다. 문장 역시 심각하게 비틀린 상태인데, 연구과제로 삼으실 뜻은 없으신지요? -외래어 어휘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반응 보이면서 외래문투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휘만 아니라 외래어투 문장을 다듬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최인호 한겨레말글연구소장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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