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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15:42 수정 : 2006.03.23 19:17

윤이상 음악 연구소. 윤이상평화재단 제공

조국의 분단과 하나됨이 윤이상 음악의 화두

윤이상의 음악을 관통한 주요한 주제는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나라를 빼앗긴 일제로부터 분단까지 우리 민족의 고통과 희망이었다. 그런만큼 조국의 분단과 하나됨은 그의 음악에서 주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지점에서 윤이상의 음악은 정치 현실과 만난다.

예를 들어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 ‘견우와 직녀 이야기’(77년)는 분단된 조국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동백림사건의 쓰라린 체험은 그의 작품에 정치성을 한층 짙어지게 했다. 80년 광주항쟁이 터졌다. 부인 이수자씨에 따르면 그때 그는 텔레비전 뉴스를 뚫어지듯 보며 매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깊은 비탄 속에서 탄생한 곡이 소프라노와 실내 앙상블을 위한 <밤이여 나뉘어라>와 <광주여 영원히!>다. 그 때까지 그가 자신의 작품에 정치적·사회적 주제를 직접 내세우는 일은 없었다. 이들 곡은 그 최초의 예외였다. 87년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교성곡(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도 그 연장선에 있다.

“나는 이 교성곡을 1987년 2월과 3월 2개월 동안에 완성하였다. 언젠가 나는 한 번 민족을 위한,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안겨주는 곡을 쓰고 싶었다. 이 곡은 나의 량심에서 참을 수 없어 터져나온 곡이다. 이것으로써 <광주여 영원히>와 함께 나는 작곡가로서 우리민족에게 바치는 나의 절절한 호소와 충정을 표시한 것이다.”

이 곡은 독창, 합창, 교향곡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원인 통일을 노래하는 대서사시다. 통일의 염원을 시로 쓴 시인 아홉사람의 작품에 민족어법인 민요풍의 곡을 붙여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던 순간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마지막 작품인 교향시 <화염에 싸인 천사> (94년)를 내놓았다. 이 또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담았다.

그러나 윤이상의 음악에서 정치는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윤이상이 지난 1963년 북으로 간 첫번째 이유가 강서고분의 사신도에 있듯이 그에게 정치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분단된 조국이 그의 삶과 예술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윤이상음악연구소 소속 전속 관현악단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이상평화재단 제공

그는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 <상처 입은 용>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으로 내 경우에는 예술과 정치가 분리돼 있습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며, 그리고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음악가인 나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 밖에 없습니다. 즉 내 예술적 양심에 따라서 의식의 순수성과 광대한 차원을 향한 고차원적인 요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예술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므로, 만인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되고, 따라서 정치에 도움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단기간의 임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볼프강 슈파러 국제윤이상음악협회 회장은 그의 마지막 작품에 대해서도 “윤이상 선생이 정치와의 분리를 강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광주여 영원히!>는 다분히 정치성이 짙은 작품이다. 1980년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윤이상은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이 작품을 통해 내 보이고 있다. <화염에 싸인 천사>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윤이상은 슈파러와의 대담(윤이상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한다.

“전혀 아닙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그 어떤 정치적 영향이나 선동적 입장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단지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작곡가로서 이 작품을 다루었습니다. 이 화염에 싸인 천사는 내가 나의 민족을 위해 작곡한 마지막 관현악 작품입니다. 나는 분신으로 죽어 간 젊은이들을 영웅으로 추켜 세우려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들 중의 그 누구도 성인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천성과 자신들의 순수한 영혼의 열정과 걸맞게 행동하였던,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사실을 우리는 기억 속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윤이상은 루이제 린저의 말처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고, 죽음 앞에서도 음악을 쓰고, 불타는 난로 속에서도 노래를 ” 불렀을 뿐이다.

평양/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이용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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