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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 항을 떠나 일본 함대가 기다리는 먼바다로 가는 카레예츠호와 바랴그호.(오른쪽에서부터) 장갑시설이 전혀 없는 전함인 이 배는 집중포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30분만에 무력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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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의 영웅들’ 출간
인천 앞바다 러-일 해전 ‘한국은 없다’
가스통 르루가 1904년 2월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일 제물포 해전 르포를 썼다.
가스통 르루(1868~1927)는 <오페라의 유령> <노란 방의 비밀> 등을 쓴 프랑스 소설가. 소설가가 되기 전 1894년부터 1906년까지 프랑스 일간지 <르 마탱>의 특파원으로 러시아, 아시아, 아프리카를 누비며 현장기사를 많이 썼다.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주영 옮김, 작가들 펴냄)은 가스통 르루가 해전뒤 귀국하는 러시아 수병들을 인터뷰해 그 해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저술해 펴낸 <제물포의 영웅들>을 103년만에 한글로 옮긴 것. 인천의 옛자료를 수집하는 이희환 인천도시환경연대 집행위원장이 프랑스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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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외국함선 오간 편지등 눈길 제물포 해전은 러-일전쟁(1904~1905)의 서막이 된 해전. 1904년 2월8~9일 제물포 앞 바다에서 벌어진 러시아 함선 카레예츠 호와 바랴크 호와 일 함대 사이의 해상전투다. 이 전투에서 두 러시아 함선은 침몰하고 참전한 수병 700여명 가운데 최소 40여명이 사망, 200여명이 다쳤다. 선전포고 없이 시작된 이 전투로 블라디보스토크-뤼순항 고리가 끊긴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뒤이은 황해 전투에서 무력화되고 이어 8개월에 걸쳐 돌아온 발틱 함대 역시 동해에서 참패함으로써 러-일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 여파로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다. 르포는 가스통 르루가 수에즈 운하에서 수병들의 귀국선 오스트랄리앵 호에 승선해 수병들을 인터뷰하게 되는 과정 및 후일담 사이에 수병들로부터 들어 재구성한 제물포 해전의 생생한 기술이 액자처럼 끼워져 있다. 9일 전투는 애초부터 결과가 뻔했다. 러시아쪽 전력은 배 2척에 대포 14문에 불과한 반면, 일본 함대는 전함 4, 순양함 2, 어뢰정 6척에 대포 42문이었다. 전날 뤼순으로 가다 어뢰공격을 받았던 카레예츠 호와 바랴크 호는 일본 함대로부터 중립지역인 제물포 항 철퇴를 요구받고 함께 정박 중인 외국 함선의 피해를 우려해 비장한 결의로 해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두 배는 팔미도 해상에서 미리 진치고 있던 일 함대로부터 11시45분부터 30분 동안 집중포격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었고, 제물포 항으로 퇴각해 ‘황색 난쟁이’한테 선체를 넘겨주기를 거부하고 자폭 침몰했다.
르포는 러-일 해전의 전말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나 애초부터 러시아 수병을 영웅화하기로 작정하고 쓴 듯하고 정보의 출처가 러시아에 국한돼 객관적인지는 의문이다. 특별한 것은 일 함대와 외국 함대 간에 오간 편지. 일본쪽이 제물포에 정박 중인 외국 함선(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게 제물포를 떠나줄 것을 요구하자 3개국 함선은 혹시 러시아쪽으로부터 부탁받을지도 모를 호위를 거절하는 비정함을 보이고 미국은 아예 이런 협상에 끼어들지 않았다. 한국에 관한 글은 단 한줄. “제물포는 도시 자체로는 아무 매력이 없어 경비정을 타고온 장교들이 몇달씩 포구에 발을 디디지 않는 곳.”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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