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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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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
1985년 무렵, 뉴스로 대학생들이 서울 미국문화원에서 농성하는 장면을 본 일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지금과는 꽤 다른 세계였다. 말하자면 소련도 있었고 중공도 있었다. 그래서 미국문화원이 점거될 수 있다는 사실만 해도 여간 겁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대학생들이 내건 구호였다. 아마도 광주사태 진상규명 같은 구호였을 텐데, 경상도 소도시의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라, 광주사태에 진상이라는 게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미국문화원에 내걸린 그 구호를 보는 순간,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마돈나가 혜성처럼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라이크 어 버진.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중학생, 이번에는 영어사전을 열심히 뒤졌다. 버진. 처녀. 라이크 어 버진. 처녀처럼. 여자가 ‘처녀처럼’이라고 말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짐작하는 것만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가 또 한 번 바뀌었다. 그건 광주사태에 진상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놀라웠다. 내가 언어에 빠져들게 된 까닭은 세계의 지평이 그처럼 언어로 조금씩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이나 수사학이나 웅변술을 모르는 혁명가는 없다. 세계의 헤게모니는 대개 언어적으로 쟁취된다. 세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마돈나가 ‘처녀처럼’이라고 노래할 무렵, 한국에는 남장 여자 정치인이라는 게 있었다. 남장 여자 정치인의 선거 포스터를 보노라면 꽤나 무시무시했는데, 어른들은 그러려니 했다. 정치란 남자들의 세계이니까 여자가 정치하려면 남장이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이 끔찍했다. 처녀처럼 찐한 사랑 한 번 했다고 거짓말하는 마돈나가 더 좋았다. 그러던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요 다음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말했다시피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소련도 있었고 중공도 있었고 남장 여자 정치인도 있었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억 속으로 사라진 것들은 죄다 애틋하다. 우리가 수구적일 수 있는 경우는 이 때뿐이다. 삶은 이다지도 빨리 변하고 기억은 여간해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으니. 이번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강금실 씨의 보랏빛 차림새를 두고도 말이 많은 모양이다. 이미지 정치라는 얘기인데, 딴은 그렇기도 하다. 그간 정치권에서 억눌렀던 여성 이미지 그대로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 서울시를 맡길 수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 이미지보다 중요한 건 그녀의 말들이다. 예컨대 떨어져도 좋으니 신나게 선거하겠다는 식의. 언젠가 엘튼 존이 마돈나를 두고 립싱크나 하는 가수는 쏴 죽여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은 일이 있었다. 마돈나가 립싱크만 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던 데다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음악적 언어였는데, 엘튼 존은 짐짓 딴소리만 한 셈이다. 엘튼 존의 비난 뒤에는 록계 남성 가수들의 완강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마돈나를 옹호한 까닭은 그녀와 함께 나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으므로. 세계가 한 번 달라지고 나면 다시는 옛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다시는 여성들이 남장할 필요가 없는 세계가 됐으니 남장 여자 정치인마저도 그리운 게 아니겠는가. 남장 여자 정치인이 그리운 분들에게 마음 푸시라고 마돈나의 신곡을 권해드린다. 헝 업(Hung up)이다. 아바의 노래를 샘플링한 이 곡을 들으면 소련도, 중공도 있었던 그 옛날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그러니 다 같이 립싱크로 합창하자. 타임 고우즈 바이 쏘 슬로울리. 연인을 기다리는 시간도, 수구하시는 분들의 시간도 공히 참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김연수 소설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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