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16 21:23
수정 : 2006.04.16 21:23
외손자가 쓴 ‘항일 노동운동 선구자’ 서정희 평전
항일 노농운동의 선구자 농천 서정희(1876~?)의 평전이 나왔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이성규 교수. 농천의 외손자다.
서정희는 개화기와 일제시대에 독립보존, 국권회복, 항일독립, 국가건설과 함께 봉건잔재의 청산, 빈곤으로부터 해방을 민족의 과제로 보고 운동의 현장에서 활약했다. 열아홉에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서른 되던 해(1907년) 을사오적 암살을 꾀하다 진도에 유배되었다. 1919년에는 3·1 만세운동에 참여해 시위를 선도하여 1년가량 옥고를 치렀다.
그가 특이한 것은 양반신분을 포기하고 ‘신백정’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소작인과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한 점. 1923년 광주소작인협회를 결성해 소작쟁의를 벌여 불량지주 규탄대회에서 연설하고 암태도 소작쟁의를 조정해 타결시키기도 했다. 그는 형평사운동에도 동조하였으며 노동공제회, 전라노농연맹회, 남선노농연맹 등을 조직해 지도했다. 그는 과격한 혁명 대신 실현 가능한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하려 해 ‘우경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한때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으며 신간회 활동을 하며 신간회 해소 반대를 역설했다. 해방 이후 박헌영을 ‘매국적’이라 성토하고 반탁운동에 앞장섰으며 대한독립촉성국민회본부 간부로 활약했다.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돼 2년 동안 활동하고 6·25전쟁 때 납북됐다.
사회주의자들과 행동을 같이한 그는 신간회 운동을 고비로 민족주의 좌파로, 해방 뒤 다시 우익으로 선회하는 등 고비마다 인간적인 번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그가 체포·고문·수감에서 자유로웠던 기간은 해방이후 5년. 2년 동안의 국회의원 생활에서도 ‘영원한 반역자’을 자임했다.
10여년에 걸쳐 서정희의 행적을 재구성해 낸 이 교수는 “외조부의 발자취를 좇으면서 면·군·도·중앙의 각 조직에서 그와 함께 행동하고 고초를 겪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면서 “기억되지 않고 사라진 많은 ‘무명의 군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식산업사 펴냄. 상하 2권, 각각 1만8000원.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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