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19 22:48
수정 : 2006.04.19 22:48
불교의식 영산재 명동성당서 재현
붉은 법의를 걸친 스님들이 합장한 채 낮은 소리로 불경을 독송하고, 태평소와 징, 그리고 목탁의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노란 고깔을 머리에 쓰고 흰 장삼을 두른 비구니 스님들은 양손에 연꽃을 거머쥐고 조용하고 느린 동작의 나비춤 사위를 굽이굽이 펼쳐낸다.
어느 산사에서 열린 불교의식이 아니다. 19일 저녁 한국 가톨릭의 총 본산인 서울 명동성당의 한가운데서 연출된 불교의식 영산재(靈山齋)의 한 장면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3주 정도 앞둔 19일 저녁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는 불교 태고종 영산재 보존회가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대중들에게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는 모습을 재현한 영산재 공연을 통해 종교 화합의 한 장을 연출했다.
평화방송이 오후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가량 녹화한 '최호영 신부와 함께하는 교회음악 콘서트' 프로그램.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불교신자와 가톨릭신자, 일반 관객 등 200여 명은 때로는 숨죽이며 때로는 탄성을 내지르며, 스님이 힘차게 법고를 두드릴 때는 감탄의 박수를 터뜨리기도 했다.
불교 의식의 하나인 영산재는 불교 음악인 범패와 춤이 한데 어울려진 종교 예술이다.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의식의 기능도 담당했으며,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됐다.
이날 영산재 공연은 평화방송이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종교간 화합 차원에서 영산재 보존회를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가톨릭은 19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한 '비 그리스도교 선언'을 통해 타종교와의 화합을 다짐하며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를 강조한 바 있다.
공연에 앞서 봉원사 전 주지 대원 스님이 "영산재는 살아있는 중생과 현세를 떠난 영가들이 부처님의 진리를 함께 깨닫게 하는 의식"이라고 설명하자, 진행자인 최호영 신부는 "가톨릭의 신경(信經)에도 산 자와 죽은 자의 통교를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고 화답했다.
또한 대원스님은 "우리나라의 종교간 벽은 아직까지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마침 천주교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종교간 화합의 자리를 마련한 것에 매우감사하다"는 뜻을 표했다.
우렁찬 징소리와 함께 봉원사 영산재보존회 소속 스님 10여 명이 펼친 영산재공연은 1시간에 걸쳐 진행된 후 관객들의 큰 박수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녹화를 마무리하면서 최 신부는 "이번 공연은 가톨릭 전례의 토착화 방안에 대해서도 더욱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영산재 공연이 끝난 후 만난 불교신자 정향(50.여)씨는 "불교의 전통의식을 가톨릭이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종교간 평화의 가능성을 느꼈다"는 소감을 밝혔다.
자신이 불교도 가톨릭도 아닌 개신교 신자라고 밝힌 전직 음악교사 정희숙(60.여) 씨는 "평소 종교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영산재의 낮은 단선율로 설법하는 모습과, 가톨릭의 초기 성가인 그레고리안 성가는 매우 유사한 부분이 많다"며 두 종교 음악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타 종교간에 서로 이해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면 종교간 싸움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날 공연 실황은 5월5일 부처님 오신날 케이블 평화방송 채널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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