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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3 21:21 수정 : 2006.04.23 21:21

송만갑 손자·증손 “아무도 안 알려줘 몰라”

“증조부가 명창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전남 구례 출신 국창 송만갑 명창 후손들이 22일 처음 구례를 방문했다. 구례군은 ‘제10회 국창 송만갑 전국 판소리·고수 대회’에 손자 송국봉(67·경남 진주시)씨와 증손 송기화(54·경기 수원시)씨를 초청했다. 이들은 구례읍 동편제판소리전수관 뜰 송만갑 명창 동상 앞에 서서, “참으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송만갑(1866~1939)은 구례 출신으로 조선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약했던 최고의 소리꾼이었다. 맑은 통성으로 냅다 지른 뒤 툭 떨어뜨리는 소리는 당대를 울렸다. 그의 큰할아버지는 판소리 진양조를 완성해 판소리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송흥록(1780년께~1860년께). 송씨 가문은 3대를 이어 섬진강 동쪽 남원·순창·구례 등지에서 불렸던 동편제를 창시하고 발전시킨 판소리 최고의 명가다.

하지만 송만갑 명창의 직계 증손 송기화씨는 증조부가 명창이었다는 사실을 3년 전에야 알게 됐다. 판소리 연구가 김용근(47·전북 남원시청 공무원)씨가 수소문 끝에 송씨를 찾아 가문의 뿌리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수원의 한 농협 지점장인 송씨는 “공무원이시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말씀을 안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판소리 가왕의 후손답게 “20대들이 즐기는 노래도 한두번만 들으면 그냥 쉽게 따라 부를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 송씨는 “지난해 판소리 공연에 초청받아 갔다가 북소리를 듣고 참 기막히게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퇴직하면 소리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송만갑 명창 손자 국봉씨도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활동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을 뿐, 소리길을 가지 않았다. 부친 기득씨는 송만갑 명창 차남으로, 1913년 유성기 음반을 낼 정도로 목이 좋았지만, 공무원이 돼 소리를 접었다. 송씨는 “강원도에서 산판 일과 광산업에 손댔던 아버지가 비가 오면 가끔 혼자서 소리를 하셨다”며 “당시 소리를 해도 사회적으로 별로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두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구례에 찾아와 후손들을 만난 판소리 연구가 김용근씨는 “2003년 유네스코에서 판소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음악성은 인정받았지만, 소리 종가인 송만갑 후손들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운 적이 있었다”며 “명창들의 예술세계와 삶을 온전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후손들을 찾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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