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7 21:01
수정 : 2006.04.27 21:01
12권 계획…‘열린 민족주의’ 발칸반도 맨먼저 시작
“동·서양, 진보·보수 균형 추구…만화가 평생직업”
새 만화여행기 ‘가로세로 세계사’ 펴낸 이원복 교수
“〈먼나라 이웃나라〉가 없이 살던 시절 ‘부러운 나라’들을 소개했던 거라면, 이제는 우리가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나라, 관심갖지 못했던 나라를 찾아가보고자 했습니다.”
1000만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 ‘국민 교육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만화가 이원복 교수(덕성여대 디자인학부·사진). 동안인 얼굴은 그대로인듯한데, 어느새 올해 환갑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환갑이란 게 큰 의미는 없지만, 동년배들이 은퇴할 나이에 이 교수는 인생 후반부를 대표할 큰 작업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출간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은 인기를 누린 〈먼나라 이웃나라〉를 마무리지은 지 불과 1년, 다시 독자들과 함께 만화로 세계여행을 떠난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후속 시리즈 〈가로세로 세계사〉(김영사)가 그것이다. 최근 나온 1권 ‘발칸반도, 강인한 민족들의 땅’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중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중국·몽골, 아프리카로 이어진다.
이 교수가 이들 지역을 고른 것은 그동안 강대국 역사에만 치우쳤던 우리의 관성을 벗어나 잃어버렸던 세계사의 다른 반쪽을 다시 찾기 위해서다. 백인 중심, 서구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책의 형식도 〈먼나라…〉와는 좀 달라졌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도 화자로 등장했던 ‘찐빵모자 아저씨’와 함께 새로운 캐릭터들인 ‘가로’와 ‘세로’, ‘바로’가 등장한다. 이야기도 나라 중심이 아니라 더 큰 테마나 지역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책 만들면서 역사 보는 방법을 배웠어요. 우리는 그동안 역사를 나라별로 보아왔는데 전세계 나라들은 대부분 20세기 들어선 뒤 생겼어요. 그 이전 역사는 사실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제국의 역사였고, 그래서 더 넓은 시각에서 같은 시대의 여러 지역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어요.” 새 시리즈 첫권으로 발칸지역을 고른 것은 ‘민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 때문이다. “우리는 민족을 신성시하는데, 민족이란 개념은 사실 최근에 생긴 것이지요. 민족의 구분에서 이제 혈통에 따른 기준은 끝났어요. ‘열린 민족주의’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주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발칸으로 간 겁니다.”
이 교수의 그림체나 지적인 언어감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20년 전과 바뀐 것도 있다. 예전에는 모든 작업을 혼자 했지만 이젠 이 교수가 스케치를 하고 나면 제자로 구성된 팀이 먹선과 색작업 등 후속과정을 맡는다. 하지만 줄거리 구성과 자료 조사는 온전히 이 교수 혼자 한다. 남에게 맡기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중시하는 자료는 ‘백과사전’. “건조해 보여도 객관적 서술은 백과사전이 가장 정확합니다. 또 내용이 중립적이어야 하니까 백과사전 서술을 가장 많이 참고합니다.”
이 교수는 “정말 ‘팩트’(사실)에 충실했을 뿐인데, 역사란 것이 항상 되풀이되고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지다 보니 책 내용에 대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며 동양과 서양,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균형의 세계사 쓰기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꿈은 새 시리즈를 12권으로 완성하는 것. 역시 12권이었던 〈먼나라…〉와 짝을 맞추고 싶어서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그래서 요즘은 더욱 집-학교-작업실만을 반복하는 일상을 강행하고 있다. “선생이고 만화가이기도 한데, 제 스스로 무슨 직업이 좋냐고 물으면 ‘만화가’라고 답합니다. 만화가는 정년이 없거든요.”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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