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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8 18:19 수정 : 2006.04.28 18:19

‘와인견문록’ 펴낸 고형욱씨

“포도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더군요. 자연과 함께 나누는 삶이자 서구문화를 바라보는 또다른 창이었어요.”

〈와인견문록〉(이마고 펴냄)을 지은 고형욱(41)씨는 40여차례 여행을 통해 와이너리 500여곳을 돌았다. “포도열매 밖에 보이지 않던 눈에 포도나무가 보이고 땅이 보이더니 나중에는 동서남북이 보이더라”는 그는 그동안의 공부와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다섯 지역 여덟 개 포도주에 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시골이다 보니 기차는커녕 버스도 안다녀 많이 걸어다녔어요. 산길을 혼자 걸으면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그는 찬찬히 포도밭을 바라보면서 와인과 땅과 농부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포도주는 땅뿐 아니라 만든 사람을 닮았더라고요.” 맛 또는 음식 차원으로 접근했는데 알고보니 그 안에 유럽의 역사, 유럽인의 삶, 그들의 자연관이 들어 있더라는 것.

예컨대, 샹파뉴 지방의 모엣 샹동에서 만든 ‘동 페리뇽’은 유럽현대사를 지켜보았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드골-아이젠하워 정상회담, 지스카르 데스탱-제럴드 포드 회담 등등. ‘동 뻬리뇽 로제’는 1959년부터 이란의 독재자 샤(팔레비)를 위한 맞춤형, ‘크리스탈 루이 로드레’는 러시아 황제 알렉상드르 2세만을 위한 맞춤형 샴페인이었다. 물론 ‘크리스탈’은 1917년 혁명과 더불어 부르주아를 타깃으로 바꿔야 했다.

고씨는 8년 동안 상가 등 불가피한 때를 빼고는 포도주 외의 술을 마시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포도주에 빠져 살았고 마실 만한 것은 다 마셔봤다. 1년반 전부터는 아무리 최고급의 포도주라도 욕심이 동하지 않는다.

“어느날 문득 내가 교육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얘기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세 유럽사와 프랑스 지역사는 물론 와이너리 가문의 역사까지 조사했다. 그러다 보니 일급 와이너리의 포도밭 지세와 지실, 포도 품종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좋은 땅에 대한 정의가 13~14세기 수도원 시절에 이미 끝났음도 알았다.

포도주 맛보기가 추상미술 또는 클래식음악 감상과 흡사하다는 그는 초심자들이 처음에는 상쾌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지만 심취하게 되면 독특한 향취의 진미를 알게 된다면서 여유를 갖고 찬찬히 바라볼 것을 권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rk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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