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2 18:23
수정 : 2006.05.03 09:22
‘6·15선언 이후 분단해체기 진입’ 장기적 낙관
최장집 교수 ‘참여정부 비판’ 첫 실명 거론 반박
백낙청 교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출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새 책을 펴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펴냄)이다. <흔들리는 분단체제> 이후 8년만이다. 1999년 이후 여기저기 발표한 글이나 강연문 등을 묶었다. 한국 사상계를 이끄는 대표적 인물인 만큼 각 글은 발표와 동시에 조금씩 언론에 알려졌었다. 이번 책은 이를 한데 엮어 ‘2000년대의 백낙청’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게 두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입론인 ‘분단체제론’을 다듬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2000년 6월15일 남북공동선언 이후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바야흐로 ‘분단체제의 종식’으로 이어질 해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물론 거시적 수준에서 본 장기적 전망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낙관주의’는 논쟁거리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비판한 것도 눈길 가는 대목이다. 최 교수에 대해 “분단체제 전체에 돌려야할 책임을 현 정권에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분단현실의 존재를 망각한 비판은 곧바로 (분단)체제를 굳혀주는 효과”를 지닌다고 적었다. 백 교수와 최 교수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각각의 사상을 형성해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동안 우회적인 비판과 긴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백 교수가 직접 실명을 거론하며 최 교수를 비판한 것은 처음이다.
2일 백 교수는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두 가지를 축으로 책 이야기를 풀었다.
한반도식 통일이 지금 진행중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 베트남식, 독일식, 예멘식 등과 다른 한반도 고유의 방식으로 분단체제가 해체되고 있다. 속도가 느려진다거나 부분적으로 역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큰 흐름은 변함없을 것이다. 2000년 6월에 그 과정이 시작됐고 지금 진전되고 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분단체제를 끌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느냐 오히려 더 큰 불행과 혼란을 자초하느냐는 능동적 선택을 할 수는 있다.
최장집 교수를 비판한 이유는
= 분단현실을 망각하고 진보담론을 펼치는 분들이 담론지형에서 더 큰 권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비판했다. 약간의 논란을 일으켜 보려 했다. 기본적으로는 (그들이) 시야를 세계적 시각으로 넓혀야 한다. 사회과학계 전체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만 이를 진보진영의 노선투쟁이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겨레>는 백 교수의 바람대로 모처럼의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이 두 교수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을지 분석·전망하는 기사를 오는 6일치 문화면에 실을 예정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
인터뷰
다음은 이날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문답들이다. 주로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한미동맹은 현실…민족공조만 고집하는 건 반대
-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가.
= 가만 있어도 저절로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통일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계속 노력한다면 정권 바뀐다고 해서 진행과정이 멈추리라고 보진 않는다. 속도가 느려진다거나 부분적으로 역행 일어날 가능성 충분히 있지만.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와는 별도로 남북간의 화해교류라는 큰 흐름 지속돼야 한다는 인식이 다수 국민들에게 있다. 느리고 빠른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본다.
- 책에 실린 글은 (지난해 6자회담의 결과물인) 9·19 합의 이전에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이후 경색된 국면이다. 남북관계 해소에서 북미관계 중요한데, 여기서 남한이 중간에 끼어서 한미동맹에 균열이 일어나는 게 오히려 상황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하나 질문은 현재 우리 상황에서 봤을 때,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이 더 높아졌지만, 통일에 대한 열망은 감소한 게 아닌가 한다.
= 우선 9·19 공동성명 나오면서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 평화체제 기본구상 발표됐다. 근데 그 후 진전보면 역류현상 나타나는 것 사실이다. 한반도 상황 진전보면 큰 성과 이뤄져서 순탄하게 진행된 적 없다. 반드시 역행현상 생긴다. 그런데도 그것 뚫고 이만큼 왔다.
북미관계에 남이 공연히 끼어드는 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말하겠다. 남에서 미국 제쳐놓고 오직 북과 민족공조만 하겠다는 노선에는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이라는 것은 대등한 동맹은 아니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이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나갈 때 북에 대해 실질적 도움줄 수 있고 북미관계 해법에도 도움줄 수 있다. 근데 9·19 성명 자체도 남이 적극 개입하고 미국을 끌어왔기 때문에 나온 것이지, 그냥 북미 사이에만 맡겨놓았다면 그런 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북미 관계 힘든데, 우리가 완전히 북 입장 거든다거나 오직 한미동맹에만 매달린다거나 하지 않고, 이 두 관계를 슬기롭게 관리하면서 개입하는 것이 가장 도움되는 길이다.
통일 열망이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 식었다는 것은 여론조사상에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것이 통일 개념 바꾸자는 거다. 단일 국가로 뭉쳐서 살자고 하면 실감나지 않고 나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세금 더 내서 오히려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분단 고수하느냐 완전한 통일이냐는 양자 택일이 아니다. 통일 개념을 바꿔 생각하면 한반도 고유의 통일과정이 바로 발 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게 이 책의 주장이다. 가령 통일에 무관심한 사람도 현재 남북의 화해와 교류 지지하느냐 마느냐 하고 여론조사하면 압도적 다수가 지지한다. 이를 근거로 우리 국민은 평화에만 관심있지 통일에는 관심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일부 학자나 일각의 주장이지 그것은 국민들의 정서와는 다르다.
시민사회 참여가 한반도식 통일의 핵심
- 한반도 고유의 통일이란 게 무엇인가.
=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했다. 이때는 점진적으로 하자는 것이었지 우리 고유라는 대목까진 안 갔는데, 저는 거기까지 발전시켜 본 것이다. 분단체제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이기도 하고 작년부터는 6·15 남측대표 맡아 북쪽과 접촉하면서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됐다. 한반도식 통일이 뭐냐. 우선 베트남식 아니다. 베트남은 자주통일이긴 한데 평화통일 아니었다. 독일식도 아니다. 자주적·평화적이긴 했는데 한국에는 해당 안된다. 남이 북을 흡수하는 통일은 북이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다. 강압으로 해결하려 들면 전쟁 가능성 높다. 또 하나 구서독과는 달리 한국이 설혹 흡수한다 해도 소화할 능력 없다. 북의 큰 변화나 혼란 일어날 때, 제일 먼저 (북에) 들어갈 권리 갖는 것은 국제법상 중국이다. 서독식은 한반도에서 불가능하고 주어진 조건 볼 때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한가지 예맨식. 수뇌부가 담합해서 통일 선포했다. 지금은 민주화된 정도로 보나 사회복잡성으로 보나 대통령이 마음먹어도 그런 식 담합 불가능하다.
결국 평화적, 점진적으로 서로 대등한 관계 위에서 시민사회의 폭넓은 참여 과정을 거쳐 통일을 해야 한다. 현재 이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가고 있다. 한반도 고유의 통일과정이 2000년 6월에 시작됐고 지금 진전되고 있고 난관 잇겠지만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평화체제 구축되고 시민사회 접근 상당 정도 이뤄지면 남북연합제 등 선포하면 그것이 1단계 통일 아니겠느냐.
분단체제 87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 분단체제 이론이 현재에도 적용 가능한가.
= 분단체제론이란 게 양쪽의 정권이 똑같은 놈들이다는 이론이 아니다. 그 체제 안에서 어쨌든 체제를 유지하려는 특혜를 받는 세력이 남에도 북에도 있는데, 그 작동방식은 서로 전혀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정권에 얼마나 가담해 있느냐는 남과 북이 다르고,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다. 근데 98년 <흔들리는 분단체제> 쓸 때는 97년 외환 위기 맞았다. 북에서는 식량난 맞았다. 체제라는 게 성립하려면 그 안에 사람들 먹고 살게 해야 하는데, 북에서는 그 능력 의문시됐고 남에서도 금융위기 맞아서 체제 관리에 큰 어려움 겪게 됐다. 그래서 분단체제가 흔들린다는 생각 굳혔다.
87년에는 남쪽 정권이 민주화됨으로써 이미 분단체제 동요 시작됐다. 물론 87년 이후 남쪽 정권의 성격이 변화한 것에 비하면 북은 거의 안 변했다. 근데 그것은 남쪽 변화가 워낙 엄청나서 그런 것이고 북도 안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권 성격, 노선에도 많은 변화 있었고 특히 인민과의 관계, 민중의 생활상, 정부의 경제관리 방식, 대외관계, 대남관계 등에 엄청난 변화 있었다. 이것이 북 정권 입장에서는 분단체제 안에서 체제 유지관리하려는 노력이지만 큰 맥락에서 볼 때는 분단체제가 87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97년부터 그 흔들림이 더 눈에 띄었다면 00년 6월 이후에는 허물어지는 단계로 들어섰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다고 본다.
한·미 FTA는 남북통합 추진 동력 훼손하는 것
-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는 어떻게 보나.
= 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이렇게 해서는 남쪽 경제도 크게 훼손이 되고 미국 의존 높아지고 우리가 능동적으로 남북통합 추진할 동력 떨어진다. 그것만은 막아야 된다. 그리고 막을 수 있다. 애초에 정부가 발표했던 식으로 속전속결 처리하는 사태는 당연히 막아야 하고 막을 수 있다. 그 시한을 넘기고 나면 정부도 서두를 이유 적어지는 거다. 외환위기 거치면서 국민들이 교육 많이 됐다. 군사작전 하듯이 거기에 맞추는 일만 방지하면 비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대는 말 믿을 수 없다. 내 생각엔 지역내 에프티에이 먼저 하고 그걸 바탕으로 미국과 하는 것이 순서 아니겠나 하는 생각 있다.
- 변혁적 중도주의의 세 주체로 엔엘(민족해방노선), 피디(민중민주주의), 비디(부르주아민주주의)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환골탈태 요구했다. 환골탈태가 무엇이냐
= 기본적으로는 시야를 세계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 통일의 과제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는 과제건, 아니면 남한 내에서 가능한 개혁을 하는 문제건, 시야를 세계적으로 넓혀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가령 엔엘(민족해방노선) 같으면 남쪽 사회만 생각하는 것을 절반나라의 시각이라 비판하면서 온전한 일국적 시각 가져야 한다고 비판하지만, 결국은 남북 합친 것을 다시 하나의 절대적 단위로 보는 경향 강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세계체제라는 것이 있고, 그게 한반도에서 분단을 통해 작동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든 1차적으로 분단을 넘어서자는 차원에서 통일을 접근하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 시야 부족하다.
피디(민중민주주의)의 경우도. 남한 노동자 계급을 말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남한 사회를 기본단위로 잡고 그 안에서 계급대립 위주로 생각하는데, 계급이라는 것이 경제와 관계 있는 개념이다. 경제는 세계 단위로 돌아가는데 계급만 일국 단위로 설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 전세계의 단위에서 일하는 민중이 어떻게 잘사는 체제를 만드느냐는 시각에 기반해, 남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냐고 접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디 입장에서도 그런 식으로 시각 교정하면, 중산층 개혁주의자들과의 협력이나 통일운동이나 사업하는 사람들과의 협력이 자연스레 가능해질 것이다.
실은 세계적 시각이 온건개혁세력에게 더 많다. 그러나 세계화의 대세에 대해 기본적으로 문제제기한다든가, 제대로 맞서서 적응하기 위해서도 남북간의 통합을 잘 아뤄야 한다는 인식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거기도 제대로 된 세계적 시각 갖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시각의 전환 바탕으로 한다면 자연히 추구하는 의제에 대해서도 조정 이뤄질 것이고, 새로운 연합이 가능할 것이고, 그 정도면 환골탈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최장집 교수와 사전 교감 없어…실명 비판 계속할 것
- 이번 비판 관련해 논란을 위해 최장집 교수와 사전 교감은?
= 전혀 교감 없다. 나는 원래 지식인 담론은 계급장 떼고 하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자로서의 자격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한마디 한 것이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사회과학계에 너무 토론이 없는 것 같다. 사회과학계 전체에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만 이를 진보진영으로 한정해서 노선투쟁이라는 식으로 접근 안했으면 좋겠다.
- 앞으로 다른 학자들에 대한 실명비평 계획도 있나.
= 필요하면 얼마든지 한다. 문학평론은 원래 실명비평이 뚜렷하다. 문학평론에선 어느 정도 전통으로 서 있다. 나 개인으로 말하면 올 초에 창비 40주년 맞아서 실명비평하자고 한 이야기는 후배들더러 그렇게 하라고 한 이야기다. 나는 옛날부터 남녀노소 구분않고 논쟁 많이 했다.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