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8 18:37
수정 : 2006.05.08 18:37
딸이 엄마께 전하는 도란도란 다정한 얘기
아들이 아버지께 올리는 소주한잔 같은 얘기
책 ‘자식으로 산다는 것’ 펴낸 서울디지털창작집단
삶과 사람 무게에 짓눌릴 때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린다. 어디선가 쉬고 누군가에 기대고 싶을 때 바로 옆에 어버이가 있다. 굽은 허리, 깊게 팬 주름살….
그들 세대를 상징하는 문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다.” 우리네 부모들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대부분 권한은 없이 오로지 의무와 책임만 지는 삶을 살았다.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노동과 사랑을 쪼개 먹으며 자랐다.
장기영(39)씨가 이끄는 서울디지털창작집단은 “세월의 깊은 주름살 속에서도 사랑은 늙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이 최근 낸 〈자식으로 산다는 것〉(깊은강 발행)은 부모-자식간 무한한 사랑을 털어놓고 있다. 잔잔하고 따스하면서도 파란만장한 우리시대 가족사의 압축판이다. 서울디지털창작집단 회원은 현재까지 모두 21명. 이들 21명이 2004년 이후 펴낸 책도 지금까지 모두 21권.
〈광화문에는 촛불이 없다〉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우리는 당당한 꼴찌다〉 등. 창작집단이 내세우는 모토는 ‘글쓰기의 컨버전스, 스토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독자와 작가 사이 경계를 허물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게 꿈이다. 낡은 권위와 권력 대신 사랑과 열정으로 채우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를테면 문학세계의 아메바인 셈이다. 장씨는 “정신 없이 돌아가는 디지털시대일수록 쌍방향 소통과 자유로운 상상력 등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자식으로 산다는 것〉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1950년대, 고도성장에 목말라 했던 60년·70년대, 인간 자신이 쌓은 물질문명 속에서 되레 소외돼 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부모세대 사연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가본 엄마는 어찌어찌하여 어깨너머로 배워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은 모릅니다. 언젠가 글을 쓸 줄 안다면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뿐 아무 기척이 없어 용기를 내어 빠끔히 들여다본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며 책을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 무녀에서 성당에 나가 데레사란 세례명을 받은 엄마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제 낡은 담벼락만큼 작아져 우리 곁에 계시지요. 우리 키 한 뼘 클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부모님과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책 낸 동기를 굳이 들라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요.” 장씨는 “옛 얘기를 통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부모님 손 잡고 쏘주 한 잔 따르려는 마음이 모아졌다”고 했다. 깔깔대며 명동이며 종로일대를 쏘다니며 부모 속 끓이던 딸이 어머니 나이 들어 그분 삶의 무게를 바라본 느낌이 그제나 이제나 어찌 다를까? 아버지 어머니엔 이런 수식어가 그래서 늘 뒤따른다고 작가들은 말한다. ‘들풀같은’ ‘죽을 만큼 불러도 아프지 않은’ ‘도란도란’ ‘골목 어귀 발자국 소리’ ‘구공탄’‘…를 위한 변명’등등.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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