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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0 11:28 수정 : 2006.05.10 11:28

진도군 학예연구사, 난중일기·유적 등 근거제시

명량대첩의 중심지가 전남 진도군 고금면 벽파진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있다.

진도군 김미경 학예연구사는 10일 진도군에 제출한 '명량대첩과 진도-명량대첩 중심지는 벽파진이었다'라는 연구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 연구사는 논문을 통해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이 12척의 전선으로 무려 열배가 넘는 130척의 왜선을 격파한 명량해전의 중심지가 벽파진"이라면서 그 근거로난중일기 내용과 유적 등을 제시했다.

그는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17일 동안 진도 벽파정에 머물면서 명량해전의 작전 계획 등을 면밀히 수립한 후 작전 실행을 위해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고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기록에도 '이순신이 벽파진 앞 바다에서 크게 이겼다'고 기록돼 있는 등 벽파진이 그 중심이라는 사실이 자명하다"면서 "벽파진은 조류가 약해 판옥선을 수리하고 정박하기 좋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벽파진 일대에는 왜군에게 위장전술을 폈던 강강술래터와 왜군 등 전사자 집단묘역 등이 남아있다"면서 "지금까지 드러난 역사적 사료와 고증을 토대로 벽파진 시각에서 재조명 작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밖에 "해남 우수영이 명량대첩의 중심지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우수영'이라는 수군기지가 있었고 해군이 중심이 돼 연구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근영 기자 chogy@yna.co.kr (진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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