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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4 19:46 수정 : 2006.05.14 19:46

소설가 김연수씨(오른쪽)가 ‘2006 서울, 젊은 작가들’ 행사에 참가한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 지난 10일 경북 영주 선비촌에서 열린 다도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4개 대륙 15개 나라 작가들 짧은 만남, 소통의 걱정…
내전의 고통 경험한 작가 평화적 일상에 대한 부러움…
오해 편견, 그 다음에 이해 이해는 문학을 참 닮았다

소설가 김연수씨가 본 ‘2006 서울. 젊은 작가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윤지관)이 주최한 ‘2006 서울, 젊은 작가들’ 행사(5월 7~12일)에 참가했던 소설가 김연수씨가 참가기를 보내왔다.

일요일, 호텔에 짐을 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함께 탄 외국 남자가 빠른 어조로 “한국 축구가 16강에 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내 소개를 하고 이름을 물었다. 그가 이름을 말했으나,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축구 얘기를 계속했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월드컵 본선 진출에 탈락해 국민들의 실망이 컸다고 얘기했다. 나는 유럽은 축구 강국이 많아 본선 진출이 어려울 것이라고 위로했다. 별로 위안이 안 되는 듯, 묵묵부답. 그제야 나는 그가 유럽인인지 남미인인지 걱정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드러고만 죄르지였다. 헝가리에서 온 서른두 살의 소설가.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헷갈릴 가능성이 많았던 까닭은 이번에 서울과 영주 등지에서 열린 ‘2006 서울, 젊은 작가들’에 참가한 작가들의 면면이 4개 대륙 15개 나라를 망라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작가가 한데 모여 서로 얘기를 나누는 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환영만찬을 끝내고 나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짧은 만남으로 우리가 서로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로 보였다.

월요일, 토론에 참가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소설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비치의 자기소개를 살펴보니 이렇게 돼 있었다. “사는 곳은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이다. 불행히도.” 아르세니예비치는 내전의 경험이 작품 속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는 작가가 되지 말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가 일상적인 것들, 그러니까 세르비아에서도,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토로하자, 독일의 소설가 야코프 하인은 이렇게 말했다. “과자를 두고 몇 페이지를 묘사한 프루스트를 부러워한 작가가 있었다. 어떤 작가들에게는 그런 자그만 일상마저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화요일, 청계천 주변을 돌아다니던 체코의 소설가 파벨 브리츠는 술에 취한 한국인들의 표정이 너무나 우울해 보여서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왜 이렇게 밤늦도록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셔야만 하느냐고 물었다. 한국 작가들이 그건 문화적 차이일 뿐, 우울과는 다른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날 늦도록 이응준, 조경란, 김중혁, 조엘 에글로프 등과 함께 시청 뒤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다. 조금 있으려니까 비가 내렸다. 누군가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포장마차 아줌마는 아들 생각이 난다며 공짜 맥주를 건넸다. 그 마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아르세니예비치가 쓰고 싶다던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요일, 풍기로 내려가는 기차가 제천역에 잠깐 멈추자, 생후 4개월인 딸 사라를 데려온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마르셀로 비르마헤르는 얼른 구내매점으로 뛰어가 ‘맛동산’을 사왔다. 내 고향 친구와 꼭 닮은 남자였다. 비르마헤르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글쓰기밖에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했다. “너는 가족도 사랑할 줄 안다”고 내가 말했다. 물론 비르마헤르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바라보는 풍경도 즐길 줄 알았다.

금요일, 홍대 앞의 클럽에서 열린 환송 파티가 시작될 즈음에야 나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의 작가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착각과 오해와 편견이 먼저 오고, 가장 나중에 이해가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이해는 문학을 닮아 있다.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우리는 나중에야 글로 쓸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써야만 할 새로운 문학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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