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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5 00:10 수정 : 2006.05.15 00:10

연극ㆍ영화인 등 김동원씨 조문 잇따라

13일 별세한 연극배우 김동원 씨의 빈소가 차려진 강남 삼성서울병원에는 연극과 영화 등 예술계 인사들의 추모가 잇따랐다.

휴일인 14일 본격적인 추모 행렬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극작가 차범석, 장민호 국립극단 원로단원, 연극인 박정자, 최불암 김민자 부부, 정진우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영안실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예술계 원로인 차범석 광화문포럼회장은 "고인은 한국 연극사의 산 증인이자 역사이자 현장의 목격자였다"며 "국내 연극사는 고인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은 배우 생활 60년이 넘도록 스캔들 한번 나지 않을 정도로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어서 연극계가 자랑스러워 하는 분"이라며 "가정도 화목해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국립극단의 전신인 극단 신협에서 고인과 함께 활동한 장민호 원로단원은 "함께 무대에 섰던 연극인 가운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딱 1명 남았는데 이제 모두 떠나버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며 슬퍼했다.

그는 "고인이 1994년 '이성계의 부동산' 출연을 끝으로 은퇴했을 때 배우생활을 계속할 것을 간곡히 요청했는데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며 "현모양처인 아내, 아들과도 사이가 좋아 가정생활에서도 모범이 됐다"고 회고했다.

박정자 씨는 "연극배우, 영화배우로서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가장으로서도 훌륭했다"며 "무대 위에선 절대군주여서 어떤 배우라도 그 옆에 서면 빛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의 독무대였다"라고 말했다.

배우 가운데 유일하게 고인으로부터 사인을 받았다는 박씨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빈틈이 없는 선생님을 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봤다"며 "마지막 공연인 '이성계의 부동산'이 끝난 뒤에는 기립박수가 몇 분간이나 이어졌다"고 전했다.


아내 김민자 씨와 함께 영안실을 찾은 최불암 씨는 "이분처럼 한길을 걸어온 배우는 드물 것"이라며 "자신이 비유되곤 했던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보다 훨씬 다양하고 멋진 연극을 많이 한 만년 연극배우"라고 밝혔다.

최씨는 "당시 고인의 대사 억양을 따라 하는 것이 연극계 유행이었다"며 "정직하고 충실하게 작품을 분석하고 공부하면서 연기해 후배들로부터 본보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민자 씨는 "대사도 잘 외우고 무엇이든지 잘하는 완벽주의자였다"며 "영국으로 치면 '써'(sir)라는 호칭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진우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 '자유부인' 주연을 비롯해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낭만열차' 등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며 "그렇지만 고인은 무엇보다도 연극배우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최종원 씨는 "고인은 연기자로서 최고였다"며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노력하는 자세, 연기에 몰입하는 자세 등을 통해 선배로서 자세를 후배에게 보여준 연극계 대표였다"고 밝혔다.

그는 "희극을 연기할 때 웃기면서도 품격 있게 연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영화감독 임권택, 연극인 백성희 손숙, 탤런트 오현경 김성원, 연출가 김정옥, 극단 미추의 손진책 김성녀, 가수 조영남 김도향, 코미디언 전유성 씨 등이 영안실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둘째 아들 김진환(우리자산관리㈜ 전무이사) 씨는 "두 번의 자서전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께서 대본과 사진자료 등을 버리지 말라고 해서 잘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주량은 맥주 반 컵이었고 담배는 피우지도 않았고 집에서도 '사느냐 죽느냐'로 시작되는 연극 '햄릿' 대사를 입에 달고 사셨다"고 떠올렸다.

1950년대 말 '햄릿' 공연에서 입었던 의상을 47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갖고 있을 정도라고 진환 씨는 덧붙였다.

진환 씨는 고인이 연극에 대한 애착이 강해 이런 무대 의상뿐 아니라 연극 대본, 62년 연기인생을 담은 무대 사진과 프로그램, 신문기사, 영화와 TV드라마 출연사진 등 100여 점 이상을 보관해왔다고 설명했다.

진환 씨는 "2003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있었던 미수 기념전이 끝난 뒤 유덕형 서울예술대(안산) 이사장이 교내에서 보관, 전시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진환 씨는 "1951년 피난지인 대구 키네마 극장에서 연극 '햄릿'이 초연됐을 때는 무대의상이 없어 주인공 햄릿의 의상 가운데 타이즈는 미군 내복을 검게 염색해 입었고 목걸이는 미제 깡통을 두드려 만들었으며 손에 들고 있던 해골은 종이로 만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집안은 세 아들이 학교 연극반 활동(덕환), 아역탤런트(진환)로 활동했거나 가수(세환)의 삶을 살고 있어 '예능 가족'으로도 불렸다.

빈소에는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원로 연출가 이원경, 영화감독 김수용 씨 등이 이틀째 찾았으며, 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 가수 최백호와 전영록, 영화배우 최종원, 국립극단 단원 서희승 씨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 신선희 국립극장장을 비롯해 국립극단,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연극연출가협회, 연극배우협회, 음원제작가협회 등에서 화환을 보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김정선 기자 js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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